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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 대신 쌀 받아 이웃에 전달…임동성당 빈소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르면서도 민주화·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친 조철현 비오 신부가 선종했다. 향년 78세.
21일 천주교광주대교구에 따르면 광주 북구 임동의 천주의 성요한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조비오 신부가 췌장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날 오전 3시20분께 운명했다.
조 신부는 암 판정을 받은 뒤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투병 생활을 했지만 병세가 악화했다.
광주로 돌아가고 싶다는 조 신부의 뜻에 따라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최근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1938년 4월1일 광산구 본량면에서 출생한 조 신부는 1962년 가톨릭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69년 12월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광주살레시오여고 지도신부(1971년), 레지오 마리애 광주 세나뚜스 지도신부(1977년) 등을 역임하며 사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조 신부는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겪으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던 조 신부는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그는 이후에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미행을 당했으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제약을 받을 정도로 신체적 억압과 감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민주화 운동에 열망을 놓지 않았다.
조 신부는 지난 2009년 8월18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날 뉴시스와 인터뷰에 "5·18 이후 미행과 상경 제지, 밤샘 조사로 '불면 고문'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2006년 8월 30년 동안의 사제생활을 마치는 퇴임 미사에서도 그는 "사회활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들이 있어 가능했다"며 "이제 프리랜서처럼 자유롭게 활동하며 사회 정의·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 신부는 군사정권 때는 시국미사, 김 전 대통령이 10년의 해외망명 끝에 1980년대 초 귀국해 광주를 찾았을 때는 환영미사, 대통령 당선 뒤에는 감사 미사를 지냈다.
이후에도 조 신부는 5·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 학교법인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소화자매원 이사장과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아리랑 국제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통일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2008년 1월16일에는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국내 28번째.
조 신부의 빈소는 광주 북구 임동주교좌대성당 지하에 마련됐다. 이날 오후 2시 임동성당에서 옥주현 주교 집전으로 빈소 첫 미사가 거행된다.
또 장례는 3일장으로 치러지며 23일 오전 10시 김희중 대주교가 장례미사집전 하고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된다.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화 대신 쌀을 받아 농민과 생활이 어려운 시민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hgryu7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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