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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패션 정치, 그 진보의 과정을 좇다

중앙일보 박현영.이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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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26일(현지시간) 선택한 의상은 강렬한 붉은색 재킷에 검정 바지의 ‘팬츠 수트’, 다시 말해 바지 정장이었다. 재킷과 같은 색깔의 붉은 립스틱, 여러겹 층을 낸 커트 머리에 금장식 귀걸이로 스타일을 완성했다. 바지 정장은 그가 ‘정치인의 아내’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치인이 되고자 마음 먹은 이후 줄곧 애용한 패션 스타일이다. 2001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지금까지 그의 유니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힐러리는 공부벌레 수재에서 변호사, 퍼스트 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 대선 후보 등으로 지위가 바뀔 때마다 명민하게 패션을 달리 해왔다. 삶의 궤적이 바뀔 때마다 패션 스타일에 변화를 줬고, 스타일에 변화를 줄 때 삶이 바뀌었다. 무언의 패션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대학시절 머리를 기르고 두꺼운 안경을 쓴 힐러리 클린턴. [사진 인스타그램]

대학시절 머리를 기르고 두꺼운 안경을 쓴 힐러리 클린턴. [사진 인스타그램]




1960년대 대학 시절

1965년 웨슬리대에 입학한 힐러리는 당시 여느 학생들처럼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가슴 밑으로 내려오는 부스스한 생머리와 넓은 줄무늬 바지를 입은 모습은 60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여학생 모습이었다.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낀, ‘너드(공부벌레)’ 같은 모습도 종종 목격됐다.

1970년대 변호사 시절

‘너드’룩은 변호사 시절까지 이어졌다. 27세의 신참 변호사였던 1974년 연방 하원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탄핵 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단발머리에 앞가르마를 타고, 두꺼운 안경을 쓴채 출근했다. 조사 위원 대부분이 남성인 환경에서 힐러리는 홍일점의 매력을 드러내기보다는 튀지 않는 패션을 선택한다. 검정색 바지 정장에 깃이 뾰족한 프린트 셔츠를 주로 입었다. 어깨가 강조된 박스형 수트에 블라우스 등 당시 전문직 여성들이 추구한 ‘파워 수트 스타일’이었다.

1980~90년대 아칸소 주지사 부인 시절
아칸소 주지사 부인 시절 힐러리 클린턴은 원피스를 즐겨입었다.[사진 힐러리 클린턴 인스타그램]

아칸소 주지사 부인 시절 힐러리 클린턴은 원피스를 즐겨입었다.[사진 힐러리 클린턴 인스타그램]


1975년 빌 클린턴과 결혼한 힐러리는 남편이 주 검찰총장을 거쳐 주지사(1979~81년, 83~92년)에 당선되며 직업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자 자연스레 '정치인의 아내'가 됐다. 굵은 웨이브를 넣은 퍼머를 하고 물방물 무늬의 긴 원피스를 입었다. 머리를 어깨 길이로 기르고 앞머리를 내렸다. 머리띠를 하거나 헤어핀으로 반올림 머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조신한 패션 덕분에 한 남자의 아내, 내조하는 부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식석상에서는 정장을 입었지만, 평소에는 목 폴라 스웨터나 티셔츠 등을 캐주얼하게 입었다.

1993년~2001년 대통령 부인 시절

대통령 부인 시절 힐러리 클린턴은 부드러운 단색 치마 정장을 즐겼다. [중앙포토]

대통령 부인 시절 힐러리 클린턴은 부드러운 단색 치마 정장을 즐겼다. [중앙포토]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힐러리는 공식석상에서 포멀한 치마 정장을 애용했다. 빨강·파랑·핑크·회색·아이보리 등 다양한 색을 소화했다. 무늬가 많은 디자인보다는 대부분 단색이었다. 헤어 스타일은 짧은 보브 스타일로 잘라 점잖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1998년 미국 대통령 부인으로는 처음으로 패션잡지 보그 커버에 등장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의 검붉은 드레스가 금발 보브 컷과 어우러지며 ‘패션 아메리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힐러리는 다른 영부인들처럼 미국 디자이너들의 옷을 즐겨 입으며 미국 패션 홍보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사실 유럽 명품 브랜드를 각별히 더 아꼈다. 이탈리아 브랜드 토즈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을 좋아한다고 알려져있다.

2000년대 상원의원·국무장관 시절
2003년 상원의원 시절 미국 워싱턴 의원회관에서 만난 힐러리.

2003년 상원의원 시절 미국 워싱턴 의원회관에서 만난 힐러리.


힐러리는 스스로 정치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이후 ‘팬츠 수트’를 시그니처 스타일로 삼았다.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하면서 바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의원 시절에는 특히 검정, 회색 등 무채색 바지 정장을 유니폼처럼 입었다. 정치인으로 스스로 서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개인 힐러리, 유명인 힐러리로 주목받는 게 아니라 상원의원 중 한 명으로 인식되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고도의 위장술”이라고 분석했다.


단조로운 무채색 수트를 꾸며준 것은 진주 목걸이. 힐러리가 즐겨하는 진주 목걸이에는 '파워'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보통 진주는 가장 여성스러움을 나타내는 보석으로 통하지만, 힐러리의 경우 그가 즐겨입는 블랙 수트와 대비되며 오히려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보통 목걸이에 사용되는 진주보다 큰 오버사이즈 진주에다, 줄을 늘어뜨리지 않고 목에 최대한 가깝게 밀착시키는 스타일링으로 이같은 효과를 극대화했다.

대통령 후보 이후

대선을 향해 뛰기 시작하면서 힐러리는 점점 더 바지 정장 광팬이 됐다. 2013년 4월 트위터에 가입하면서 자기 소개란에 스스로 “바지 정장 광팬(pantsuit aficionado)”이라고 적었을 정도다. '2016년 미국 대통령 후보'라는 소개보다 더 앞에 세웠다. 다만 의원 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담하고 화려한 색을 더 자주 선택한다는 것. 레몬 옐로, 애플 레드, 오렌지, 보라색 등을 망라한 무지개 빛깔 바지 정장 컬렉션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꾸로 자신의 캐릭터로 완성했다. 지난해 6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첫 사진은 9벌의 빨강·파랑·흰색 재킷인데,. “어려운 선택”이라는 사진 설명을 달아 알록달록 바지 정장에 대한 조롱을 오히려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지 정장은 주로 미국 패션 디자이너 니나 맥리모어로부터 구입하는데, 한 벌에 약 160만원(1400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박현영·이도은 기자 hypark@joongang.co.kr

박현영.이도은 기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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