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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디자인, 허를 찔리다

헤럴드경제 조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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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만 중시하는 건 옛말
평범 뛰어넘는 ‘작품’ 인정
‘주시 살리프’ 논쟁은 진행형
환풍기 모양 CD플레이어
일상의 생활습관서 영감
최근엔 ‘나눔 디자인’ 확산
디자인이 새롭게 디자인되고 있다. 산업 측면에서만 강조돼왔던 디자인이 이제는 ‘생활 속 디자인’으로 자리잡는가 하면 유서깊은 박물관의 초대를 받는 예술작품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소외계층을 돌아보는 디자인도 활발해지면서 디자인은 산업을 넘어 ‘생활, 예술 그리고 나눔’의 한 장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시 상상하라” 디자인은 늘 내 주위에= 디자인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현실 속에 늘 존재한다. 디자인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특별한 영역이나 전유물이 아니다. 뛰어난 디자이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도 아니다. 누구든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 무언가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사회를 위한 디자인’의 저자 나이젤 휘틀리는 “디자인은 현대생활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디자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환풍기 모양 벽걸이 CD 플레이어. 그는 줄을 당기면 무언가가 돌아가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의 행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환풍기 모양 벽걸이 CD 플레이어. 그는 줄을 당기면 무언가가 돌아가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의 행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본의 세계적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는 “디자인은 일상의 구체적인 행위 속에 녹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 속에 디자인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 생활용품 디자인 브랜드인 ‘무인양품(무지)’이 내놓은 환풍기 모양의 벽걸이 CD플레이어는 환풍기 끈을 잡아 당기면 바람 대신 음악이 나온다. 그는 줄을 당기면 무언가가 돌아가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의 행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디자인의 환경은 산업혁명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변했다. 이후 산업디자인은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제도화한 디자인, 즉 대량생산된 공산품들의 디자인은 너무 획일적이었다.

1980년대 들어 이런 디자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으로 눈을 돌리려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표준을 고집하는 제도화한 디자인에 대한 반성이다.

한국의 북디자이너 1호 정병규는 제도화한 디자인을 ‘표준어’로, 생활 속 디자인을 ‘방언’에 비유했다. 방언에서 감칠맛 나는 우리의 정서를 느낄 수 있듯이, 생활 속 디자인을 통해 제도화한 디자인이 표현할 수 없는 일상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샤워 중이다. 눈 뜨기가 어렵다. 샴푸를 하고 싶다. 만져보니 샴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LG생활건강의 욕실용품 패키지. 만지면 무엇인지 알 수있게 디자인했다.

샤워 중이다. 눈 뜨기가 어렵다. 샴푸를 하고 싶다. 만져보니 샴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LG생활건강의 욕실용품 패키지. 만지면 무엇인지 알 수있게 디자인했다.


▶산업에서 예술로, 나눔으로= 디자인을 ‘기능’이라고만 정의하면 디자이너들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 디자인은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기능적인 제품이 아니라 전시하고 감상하는 예술작품이 된 지 오래다.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고 수집가들의 소장목록에 오른 것도 이제 새롭지 않다. 과거 예술가는 박물관의, 디자이너는 시장의 초대를 받고 싶어 했다. 경계는 사라졌다.

프랑스 태생의 세계적인 악동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주시 살리프(레몬즙 짜는 기계)’. 이 기계는 사실 레몬즙 짜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사람들은 ‘제품’을 산 게 아니라 ‘작품’을 산 셈이다.


주시 살리프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실용적이지 않은데 성공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함을 뛰어넘었다’ 등이다.

이 기구의 용도는 레몬즙 짜는 것. 얼핏 봐도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도 꾸준히 팔린다. 사람들은 작품으로 생각한다. 필립 스탁의 ‘주시 살리프’

이 기구의 용도는 레몬즙 짜는 것. 얼핏 봐도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도 꾸준히 팔린다. 사람들은 작품으로 생각한다. 필립 스탁의 ‘주시 살리프’


디자인도 최근 나눔문화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한 대학생이 설립한 ‘제이드 소사이어티’는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문구류를 비롯한 제품을 만든다. 이 회사의 주요 제품은 멸종 위기의 북극곰을 소재로 한 카드. 이 디자인은 우리 사회에 환경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내의 젊은 디자인 그룹 ‘노네임 노샵’의 ‘성냥팔이 소녀’ 프로젝트. 이 그룹은 소녀가 무관심 속에서 숨진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사실에 착안했다. 우리 사회에 소외된 존재를 돌아보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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