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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는 21세기 세계 최고의 건축가이다. 한국에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자하 하디드의 작품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를 망라한다. 그녀의 작품은 우주를 닮았다. 선이 그렇고 면이 그렇고 흐름이 그렇다. 그의 고향 바그다드는 어쩌면 자하 하디드가 지구로 들어온 게이트는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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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거기서 뭐하나? 어서 착륙하지 않고!◀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우주를 향하고 있다. 그녀가 1979년 런던에 독립 건축사무소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Zaha Hadid Architects’를 낸 뒤 메이저급 규모로 수행한 첫 번째 작품 ‘비트라 소방서’가 그렇고 2014년 개관한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그렇다. 하디드의 건축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거나 버드뷰 사진으로 보면 건물이 우주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든다. 마치, ‘어이, 친구들, 대기권 밖에서 뭣들 하시나, 어서 이 아름다운 지구에 착륙하시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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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를 시간대 별로 내려다보면 그런 상상은 더욱 커진다. 낮에 본 DDP는 우주에서 보내는 전파를 받으려 준비하는 거대한 안테나 같은 모습이다. 밤에 본 DDP는 착륙한 우주선이다. 그것은 정지된 건축물이 아니라 꿈틀대는 생명체와도 같다. 상상이라고? DDP는 외부 마감을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했다. 그 알루미늄 패널들은 다시 14가지의 패턴으로 분리된다. 형태별로 평판, 1차 곡면판, 2차 곡면판으로, 분절별로 원판, 1/4 분할판, 1/16 분할판으로, 색상별로 내추럴 실버, 크리스탈 실버, 실버 챌리스, 브라이트 실버로 나뉜다. 그리고 타공별로 무공판, Φ(파이, 지름)20 타공판, Φ25 타공판, Φ30 타공판 등으로 나뉜다. 그리하여 DDP는 보는 사람의 시선, 걷는 속도와 방향, 광선의 성격, 그리고 현재 시간에 따라 헤아릴 수 없는 형태로 꿈틀대는 것이다. 이 패널 디자인은 전적으로 자하 하디드의 생각이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3차원 설계기법을 사용했으며, 2차 곡면판 제작을 위한 특수 성형 장비와 3차원 레이저 절단기를 도입함과 동시에 전 공정을 컴퓨터시스템으로 진행했다. 패널뿐만이 아니다. 세상 그 어느 건축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동선과 둘레길, 입체적 계단과 미로와도 같은 진출입로 등, DDP는 최소 열 번은 가야 평면도가 머리에 입력이 될 만한 구조의 건물이다. 그러느라고 쓴 돈이 5000억원이다. 5000억원의 세금을 써서 어떤 효과를 보고 있는지 아직 평가할 단계는 아니다. 상권이 좋아졌고 관광객이 늘어났다는 수치적 성과는 일단 좋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공공건축물인 이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DDP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흥분하는 것은 사실이다. 건축 디자인에 흥분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패션위크 등의 각종 이벤트에 심쿵하고, 기발한 전시에 두근두근하고, 올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오묘한 동선에 저절로 웃음을 터트린다. 빼어난 공공건축물의 가치는 그 건물이 방문객의 기분을 상승시키고, 숱한 영감을 떠올리게 해주고, 건축물의 공공성을 공유할 마음이 저절로 생길 때 완성되는 것이다. DDP는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DDP를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작품들이 대부분 해당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높은 빌딩이 무조건 랜드마크가 되는 시절은 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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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자하 하디드가 남긴 세계의 유산◀
자하 하디드가 세계적 메이저 건축가로 인정받은 시점은 1994년이었다. 1979년에 설계사무소를 차리며 독립한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독립 초창기 자하 하디드에게는 ‘페이퍼 아키틱트’(paper architect) 즉, ‘종이 건축가’라는 조롱 어린 닉네임이 붙기도 했었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들은 종이 위에만 존재하고 실제로 건축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건축계에서는 당시 그녀의 도면 속 그림이 건축되지 못하는 이유를 ‘파격’과 ‘시공 실현의 두려움’으로 본다. 생전 처음 보는 디자인의 설계도 앞에서 적지 않은 건축주들이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했다. 종이로 볼 때는 좋지만 완성되지 못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런 경우 일부 건축가들은 설계 변경, 시공법 조정 등을 통해 ‘계약의 성사’를 꾀하기도 한다. 자하 하디드는 타협하지 않았다. 제안한 도면이 최선의 결과물인데 그걸 변경하는 것은 프로젝트를 약화시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오히려 ‘색다른 건축’의 조건이 될 낯선 재료와 방법을 찾아 더욱 생경스러운 꿈을 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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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에노 과학센터 Phaeno Science Centre photo Werner Huthmacher |
자하 하디드를 유럽의 메이저 건축계에 데뷔시킨 작품은 1993년에 완공한 ‘비트라 소방서’이다. ‘비트라 Vitra’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가구 회사다. 독일에 위치한 공장의 대형 화재로 엄청난 재앙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이 회사는 공장 내에 소방서를 지어 스스로 화재를 예방하고 진압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비트라는 디자인 기업답게 건축디자인, 실내 디자인에도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자하 하디드가 소방서 프로젝트에 초대된 결정적 이유는 그녀의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시도’를 비트라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비트라 소방서는 자하 하디드 건축의 결정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비대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건물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고, 실내 동선과 분할 역시 바둑판식이 아닌 기능과 디자인의 조화를 이룬 비대칭 형식이었다. 10년 뒤 비트라 소방서는 비트라 공장 근처에 정부 소방서가 생기면서 문을 닫고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Charles-Eames-Straße 2, Weil am Rhein, Germany)’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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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라 소방서 건축 이후 자하 하디드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1939년에 최초로 건립된지 60여 년만에 전면적인 리뉴얼 작업에 들어가 2003년에 재개관한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네티에 있는 ‘로이스&리처드 로젠탈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s Center, 44 E 6th St,Cincinnati, OH 45202,USA)재단은 자하 하디드에게 새로운 건축을 의뢰했다. 이 미술관 역시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지그재그 형태의 보행경사로 등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독일 라이프지히에 지은 ‘BMW 센트럴 빌딩’(BMW-Allee 1,04349 Leipzig,German)은 공장(블루 칼라)과 사무실(화이트 칼라)이 공존하는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조립부터 완성, 출고 과정을 건물의 중앙부에서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의 포스터를 보는 기분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파에노 과학센터’(Phaeno Science Centre, Willy-Brandt-Platz 1,38440 Wolfsburg, German)는 복잡한 콘크리트 엔지니어링을 동원한 기발한 건축물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볼프스부르크(폭스바겐 본사가 있음)를 상징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마감한 이 건물에는 다양한 각도와 비정형 창이 눈에 띄는데, 이런 형태가 훗날 서울의 DDP로 진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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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수영장 London Aquatics Centre photo Hufton Crow |
▶곡선 건축으로 기존 공식을 파괴하다◀
자하 하디드 건축의 독특한 양식 가운데 ‘곡선’이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뚜렸한 양상을 보이곤 했는데, 2012런던하계올림픽을 위해 건축한 수영장은 어떻게 보면 고래나 노아의 방주, 심지어 가오리가 연상되기도 하는 유선형 건축물이다. 내부 건축도 특이해서 자연광의 농담까지 고려한 디자인과 하늘에 떠 있는 비행선에서 수영하는 것 같다는 사용자들의 소감도 들리는 명소가 되었다. 고대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 로마를 미래와 연결하겠다는 취지로 건축된 ‘막시뮤지엄’(MAXXI Museum of XXI Century Art, Rome, A,Via Guido Reni, 4,00196 Roma, Italia)은 곡선과 직선, 비대칭 등 하디드 건축의 특징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음은 물론 VR을 닮은 건물 상층부에서는 자유분방한 유머마저 느낄 수 있다. 자하 하디드의 곡선 건축은 네모 일색의 세계 건축계에 도전한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이고, 그는 그 곡선으로 세계의 부자와 권력자들을 매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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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논란이 대상이 된 건축물로는 중국의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드라 알리예프 센터, 그리고 ‘카타르월드컵 경기장’등을 들 수 있다. 중국 남부 지역의 맹주 광저우가 문화 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기 위해 기획한 ‘광저우 오페라하우스’(1 Zhujiang W Rd,Tianhe, Guangzhou, Guangdong, China)는 주장강변에서 오랜 세월 다듬어진 반들반들한 바위(Boulder)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건축물이다. 유려한 외관도 매력적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동선, 웅장한 객석의 사진을 보면 언젠가 그곳에 앉아 명작 오페라 한 편에 빠져들고 싶다는 욕망이 저절로 올라온다. 광저우 오페라하우스는 중국 최대의 도시 광저우에 문화를 입히는 신호탄으로,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주장강변 일대는 문화, 금융, 공원 등이 조성되어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자하 하디드의 곡선 건축의 백미로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드라 알리예프 센터를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르제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있는 헤이드라 알리예프 센터는 카스피해를 바라보는 문화 지구에 위치하고 있는 공공시설로 도서관, 박물관, 국제회의장 등의 시설을 들어서 있는 극강의 곡선 건축물이다. ‘극강’이라는 단어를 붙인 데에 대해선 사진을 보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 전체를 감돌고 있는 곡선은 흐르는 강물이 되기도 하고 끈적한 점액이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이 되기도 하며 각도에 따라서는 고래 또는 상어떼로도 보인다. 건물 외벽을 타고 흐르는 곡선에서는 실크로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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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비싸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에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비판이 늘 등장한다. 기존의 질서와 딴판인 새로운 디자인의 건축물을 세상에 구축하고 있는 단계에서의 시비는 당연한 과정일 수 있다.
새로운 모든 것에는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비용 문제는 특히 공공 건축물의 경우 ‘세금’이 투입되는 일이니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고, 기본이 수천 억원, 많게는 조 단위까지 올라가는 건축비를 놓고 입 다물고 있을 정부는 없을 것이다. 작년 7월 아베 일본 수상은 이미 확정된 자하 하디드 설계 올림픽경기장 건설 계획을 ‘고비용과 일본 건축가그룹 등 공공 여론 악화’를 근거로 건축 설계 공모를 백지화하고 2차 공모를 실시, 일본인 건축가 ‘켄고 쿠마’의 작품으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 일본 정부와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간에 주고 받은 계약서의 조항은 유효하고 논란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자하 하디드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자하 하디드 사후 하디드의 건축 패러다임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걱정의 여지가 없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는 자하 하디드가 설립한 회사이지만 1988년에 파트너로 영입된 ‘패트릭 슈마허 Patrik Schumacher)와 이사진들, 디자인 디렉터, 한국인을 포함한 건축가 350여 명이 ‘자하 하디드’의 건축 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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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는 남자 일색의 세계 건축계에 비정형, 곡선, 그리고 창의적 소재와 공법, IT와 결합한 설계와 시공 등 새로운 무기를 들고 들어가 확실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건축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건축물을 찾아간 평범한 시민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받으며 즐거워하는 현실들이 그가 아름다운 지구를 위해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다.
[글 atman(test think) 사진 Zaha Hadid Architects]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24호 (16.04.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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