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노동인권 다룬 웹툰 송곳 작가 최규석 이야기] ‘분신 투쟁’ 노동자…만화로도 못 다 그릴 ‘현실’입니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화~악’. 불길이 치솟는 의성어와 함께 한 남자가 화염에 휩싸인다. 노동문제를 다룬 웹툰 <송곳> 4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분신한 남자는 버스회사 노조원 차성학이다. 이 장면이 공개되기 한 달 전인 지난 1월,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세버스노조 지부장 신모씨(59)가 사측의 교섭 회피에 항의한 직후 분신 사망했다. <송곳> 작가 최규석(39)은 갈등했다. 이 사건 발생 전에 구상한 엔딩이지만 고통받을 유족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권리를 침해받은 노동자의 절규와 분신이 어디 한두 해 일인가. 허구같은 현실, 그게 대한민국의 민낯 아니던가. 최규석은 고심 끝에 원안대로 밀고나갔다.


<송곳>은 부당해고 지시에 맞선 대형마트 과장 이수인이 노동운동가 구고신을 만나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웹툰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해 말 JTBC 드라마로 방영돼 화제를 모았다. 특유의 독설과 유머를 곁들여 사회문제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드러내는 최규석의 힘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7일 최규석 작가를 만났다. 5부작 중 4부를 마치고 마침 휴식 중이었다. 그는 2부 때부터 각 부가 끝나면 한두 달씩 휴지기를 가졌다. 취재를 위해서다. 그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측에 맞서 싸우다 2014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양산분회장의 이야기를 취재하러 내일은 경남 양산에 내려간다”고 말했다.

- <송곳>이 이제 8부 능선까지 왔네요. 노동운동과 노조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그린 <100℃>의 영향이 커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의뢰로 이 작품을 시작할 때가 노무현 정권 말기였거든요. 당시 우리 사회 기저엔 민주화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번지고 있었어요. 정치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삶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나아진 게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특히 대량실업과 함께 비정규직이 양산됐고, 노동자 파업과 분신자살이 잇따랐죠. 노동 관련 서적들을 찾아봤어요. 얘깃거리가 많은 영역이라고 판단했죠. 대중예술이 정치·사회적 이슈를 잘 다루지 않는 관행에 반발심도 있었고요. ‘노동 소재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해도 직장생활 경험이 없잖아요. 묘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취재가 필요했어요. 하종강 선생(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을 시작으로 노동현장의 여러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했어요. 포기도 수차례 했죠. 제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보니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잘 안 잡혔거든요. 실마리가 풀린 건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나면서예요. 김 위원장이 걸은 길을 좇으면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알려졌듯이 김 전 위원장은 <송곳> 주인공인 이수인의 실제 모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5년간 군복무를 한 뒤 전역한 다음 2008년 까르푸(만화에선 ‘푸르미 마트’) 정규직 매니저로 입사했다. 2002년 부임한 프랑스인 점장이 직원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지시하자 2003년 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그해 전체 직원 6000명 중 1%인 60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해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노조위원장이 됐다. 까르푸는 이후 이랜드그룹에 인수돼 홈에버로 됐다. 최 작가는 “김 전 위원장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은 다음 다양한 현장의 일화를 섞어 작화했다”고 설명했다. <송곳>의 또 다른 축인 구고신 캐릭터는 여러 활동가의 모습을 조합한 것이다.

- 노동 소재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는데 어떤 전략을 썼나요.

“종전 제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영웅적인 캐릭터들을 등장시켰죠. 구고신은 철인(鐵人)에 가까운 이미지이고, 이수인도 자신의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 희생을 치르는 사람이잖아요. 또 하나 전략은 독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도록 이수인을 잘생긴 외모로 구현한 거였어요(웃음). 워낙 낯선 소재라, 주인공의 감정이 최대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등 웹툰의 많은 구절이 명언으로 회자됐어요.

“만화는 장르 특성상 글을 많이 넣을 수 없는 만큼 최대한 대사를 줄여야 해요. 그러면서도 효과를 주려면 대사가 압축적이고 강렬해야 하죠.”

- <송곳>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리고 싶어요.”



- <송곳>은 온라인에서 4부 연재 중에 방송 드라마로 제작됐어요. 화제가 됐고 상찬이 따랐지만 시청률(2.3%·TNMS)은 높지 않았죠. 원작자로서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제 예상보다는 시청률이 잘 나왔어요. 만화도 망할 줄 알았거든요(웃음). 전 이 만화를 그리면서 가르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만약 드라마가 제가 의도적으로 눌러놓은 이 점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거나 잘못 표현하면 유치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연출자가 균형을 잃지 않고 드라마로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송곳>과 윤태호 작가의 <미생>을 비교하는 이들이 많아요. 둘 다 두 직장 내 ‘을’들의 이야기이고, 드라마로 제작됐기 때문일 텐데요.

“<미생>과 <송곳>은 달라요. <미생>은 비정규직 청년의 눈을 통해 대다수 직장인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해주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감했죠. 반면 <송곳>은 노동운동 자체가 소수 경험이다 보니 확장성이 떨어져요.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윤 작가님이 저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에요. 하하하….”

<송곳> 이전에도 최 작가 작품은 이른바 ‘잘나가는’ 인물이 주인공인 적이 없다. 그의 시선은 늘 낮거나 어둡거나 불편한 곳을 향한다. 그러면서도 익살스럽다. 개그를 삽입해 읽는 동안 키득거리며 웃게 만들고 책을 덮은 뒤에야 묵직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패러디 단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2003년)가 신호탄이었다. 이 만화에서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는 중년이 된 후 공장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가 되고, 또치는 창녀가 된다. 한국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꼬집은 블랙유머였다. 하지만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둘리를 그렇게 묘사한 데 충격받고 분노하는 독자도 많았다. 최 작가는 “폭력이 담긴 만화에 분노할 힘이 있다면, 실제 일어나는 폭력에 분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습지생태보고서>(2004년)는 비만 오면 물이 새는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대학생들의 궁상과 나락을, <대한민국 원주민>(2008년)은 작가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가난한 한국인의 초상을 그렸다. <울기엔 좀 애매한>(2010년)은 대학입시 만화학원에서 마주친 청소년들의 우울한 현실을 자학 개그와 위악적인 독설로 보여준다. 대부분 경험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를 잘 넘나드는 것 같아요. 원래 유머감각이 뛰어난 편인가요.

“친구들과 있을 때도 잘 웃겨요. 작품에 개그를 삽입한 건 2004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습지생태보고서> 때부터예요. 아침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심각한 내용을 보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 웃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최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은 가진 게 없는 캐릭터들이죠. 이들에게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주변의 익숙한 모습들이니까요. 제가 만나는 이들의 대다수는 백 없고 돈 없는 보통 사람들이에요. 가족관계, 회사, 돈, 이런저런 것들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면서 끌려가거나, 아주 작은 선택으로 위치이동 하는 정도의 삶을 살죠. 그들의 행동을 표현하려다 보면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거예요. 환경이 행동을 규정하니까요.”

그의 작품세계 역시 성장환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1977년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은 가난했다. 자전적 이야기인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밝혔듯 아버지는 육체노동자였고 어머니는 행상을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살았다. 누나 넷 중 셋은 공장생활을 했다. 그 중 셋째 누나는 고교 때 다닌 공장의 중금속 때문에 아이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 가난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는 없었나요.

“없었어요. 돈은 없었지만 엄마는 항상 헌신했고,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다소 무능하고 폭력적 성향도 보였지만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어요. 제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그런 당당함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위계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 그게 상처받지 않고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중·고교 시절 그는 ‘만화 좀 그리는 친구’로 통했다. 그러나 학원비가 없어 미술학원에 등록할 수 없었다. 꿈을 포기한 채 고3이 됐다. 어느 날 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찾아와 같이 학원에 다니자고 설득했다. 애써 누르고 있던 욕망이 꿈틀거렸다. 집에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아버지의 능력 밖 일이었다. 셋째 누나가 공장에 다니며 힘들게 부은 적금을 타 학원비를 대줬다. 남들보다 늦게 미술을 배운 그는 때마침 4년제 대학 중 처음으로 만화학과를 개설한 상명대에 입학했다. 1998년 서울문화사 신인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발 극화부문 대상,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 등도 받았다.

-만화학과에 들어간 건 전업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였나요.

“살면서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4년제 대학에 만화과가 처음 생겨 교수 되기 쉬울 거라 생각해서 간 거예요. 하지만 이론 공부가 저와 맞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공모전에 적극 참여해 수상도 몇 번 했어요. 졸업 무렵엔 어디든 불러주는 회사가 있으면 가려고 했죠. 하지만 졸업을 하고도 취업을 못했어요. 곡절 끝에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창작지원실을 얻어 다른 두 친구와 들어갔죠.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도 그때 완성했어요. 당시 방송 인터뷰도 하고 나름 유명해졌는데, 달라진 건 없었어요. 만화판이 망해 일이 안 들어왔어요. 결국 1년 만에 접고 선배의 입시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려고 창원으로 내려갔어요.”

- 강사 생활은 길지 않았나봐요.

“창원에 내려가자마자 경향신문 연재 제안을 받아 <습지생태보고서>를 그렸어요. 당시 제 수준에선 꽤 많은 돈을 받았어요. 이 정도만 계속 벌 수 있으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겠다 싶었죠. 2년 만에 학원을 접고 전업 만화가로 살기 위해 부천으로 올라왔어요.”

- 이제 한국 만화가 중 손에 꼽히는 유명인이 됐어요. 고충은 없나요.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유행하잖아요. 제 작품이 사람들의 절망을 부추긴 건 아닐까 하는 자책과 두려움을 느껴요. 작품으로 사회문제를 표현하려다 보면 세상을 본모습보다 나빠 보이게 만들 가능성이 있어요. 문제제기 자체가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고서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불안감이 늘 있었어요. 사람들은 썩은 세상을 확인하는 데 쾌감을 느끼면서 썩은 것을 어떻게 도려내고 변화시켜야 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은 만화로 문제를 제기하면 세상 어디에선가 해결책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접었어요. 문제를 지적할 땐 더 큰 책임감과 섬세함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요.”

-<송곳> 후 차기작 구상이 있나요.

“게이들의 연애를 그려볼까 해요. 이를 통해 연애가 무엇인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감정은 이성애나 동성애나 같으니까요.”

오후 2시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층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5시간 동안 계속됐다. 오후 7시, 카페 밖은 어두웠고 밤공기는 찼다. 그가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당분간은 사람들의 생각들을 뒤집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지닌 성향을 흔들면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이혜훈 장관 발탁
    이혜훈 장관 발탁
  2. 2손흥민 천하
    손흥민 천하
  3. 3강민호 FA 계약
    강민호 FA 계약
  4. 4파주 박수빈 영입
    파주 박수빈 영입
  5. 5대한항공 부상 악재
    대한항공 부상 악재

경향신문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