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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니크의 새롭게 바뀐 매장. 아이패드로 자신의 피부 상태를 체크하고 각종 제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험 바'가 설치돼 있다. |
한국이 화장품 업계에서 ‘주목받는 시장’을 뛰어넘어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시험무대(test bed)로 한국을 꼽았다면, 이제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을 벤치마킹해 앞다퉈 내놓는가 하면, 판매 방식을 새롭게 도입한 매장을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 선보이는 등 한국이 핵심 전략기지가 되고 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글로벌 화장품 업계의 판도 변화를 설명하면서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화장품 업계도 변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유명 화장품 브랜드인 크리니크는 그동안 고객을 매장 안으로 불러들여 마치 ‘진찰’을 하듯 고객의 상태를 보고 화장품을 여러 가지 추천해주던 ‘폐쇄형 방식’에서 벗어나, 마치 옷가게서 옷을 마음대로 입어보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진열대에서 화장품을 마음껏 골라 발라보고 쇼핑할 수 있는 ‘개방형 방식’으로 매장을 전환해 호평을 받고 있다.
◆클리니크 매장: 모공수축 제품 바를 때는 소리 작아지는 효과음 들려줘
특히 자신의 피부 타입을 검토해보고 직접 제품을 발라 테스팅 해보는 셀프 테스트 코너 ‘트라이 앤 바이 바(Try and Buy Bar)’와 ‘컬러 브라우즈 테이블(Color Browse Table)’ 등 독특한 셀프서비스 존은 세계 최초로 지난 4월 말 한국에 선보였다. 이 코너의 반응이 좋아 2주 전에 미국 뉴욕 블루밍 데일 백화점에도 오픈했다. ‘트라이 앤 바이 바’의 경우 바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크림이나 세럼이 나오고 해당 제품에 따라 설정된 소리가 흘러나온다. 예를 들어 크리니크의 대표상품인 ‘드라마티컬리 디퍼런트 로션’을 사용할 때는 위풍당당한 음향이 나오고 모공 수축 제품에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효과음이 나온다. 이 실험용 바는 호응이 좋아 올해 중 런던에도 문을 열 예정이라고 WSJ는 보도했다.
또 쇼핑 바구니가 놓여 있는 공간 위에는 ‘고객이 바구니를 들고 혼자 쇼핑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쇼핑을 할 때 카운터에 앉아있는 뷰티 컨설턴트(매장 직원)들에게 설명을 들으며 물건을 골라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부담을 느낄 때가 잦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단지 둘러보고 싶을 뿐인데, 옆에서 누가 와서 지키고 서 있거나 이 물건 저 물건 추천할 때처럼 부담스럽고 곤란한 경우도 없다.
기존의 일대일 판매방식에서 개방형 판매로의 변경은 크리니크에게 엄청난 전환이며, 위험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사실 제품의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기초 화장품류에선 신제품의 장점에 대해 판매 직원이 잘 설명해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 화장품 업체에서 판매 직원 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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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크리니크 매장에 설치된 '트라이 앤 바이 바' |
◆디올도 손님이 자유롭게 제품 발라보는 ‘개방식 판매’ 시도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환경이 늘어나면서 고객 대응 방식도 변하고 있다. 프랑스 명품 기업 LVMH에 속한 화장품 브랜드 디올도 개방식 판매를 시험하고 있다. 마스카라를 공개 진열하고 카운터 일부에 고객이 직접 시험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코너를 설치한 것이다. LVMH 북미 화장품부문을 주관하는 테리 달랜드 사장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개방식 판매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이 방해 없이 쇼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처럼 고객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가인 상황에서 “이 마스카라를 살 땐 이 아이 리무버(눈 화장 지우는 것)를 사야 하고, 이 아이 크림을 함께 바르면 좋습니다” 식의 뷰티 컨설턴트 판매 방식은 추천을 빙자한 ‘부담 지우기’라는 판단을 해서다. 에스티 로더 계열사인 크리니크의 안토니 바태글리아 부사장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제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규칙은 이제 끝났다. 자유롭게 제품을 시험해 달라고 고객에게 말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크리니크의 경우 개방형 방식을 도입하고 매출이 전월 대비 두 자리 수로 늘었다. 특히 과거 중저가 브랜드를 샀던 고객들도 개방형 방식을 도입한 뒤 크리니크 같은 백화점 브랜드, 즉 고급 화장품으로 소비 패턴을 옮기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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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글로벌 인기 상품이 된 비비크림. 현재 에스티로더, 디올, 크리니크, 바비 브라운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모두 비비 크림을 출시하고 있다. |
◆한국에서 인기 끈 BB크림, 전세계 뒤집어
WSJ은 이와 함께 한국에서 발전시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BB크림(블레미시 밤·Blemish Balm)이 이제 전 세계 고급 화장품 브랜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고 덧붙였다. WSJ 뷰티 에디터 엘리자베스 홈즈는 “피부과 치료 후 잡티를 가려주고 피부 재생을 돕는 차원에서 독일에서 치료 의미로 만들어졌던 BB크림이 한국에서 꽃을 피부며 전세계 화장품 업계를 발칵 뒤집었다”며 “이젠 파운데이션과 자외선 차단제 기능까지 가진 다양한 기능의 ‘뷰티 밤(BB) 크림’으로 불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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