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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FOCUS] 잠들었던 제국 `페르시아`…깨어나는 이란

매일경제 김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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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아 최초의 `제국`적 틀은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에서 시작됐다. 테헤란 남부 파르스 지방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의 영광을 증거한다.

△ 페르시아 최초의 `제국`적 틀은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에서 시작됐다. 테헤란 남부 파르스 지방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의 영광을 증거한다.


이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 대륙을 잇는 지형적 이점으로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가 해소된 지금 경제적 각축장으로 급부상 중이다. 이곳은 고대 아리아인들이 정착한 기원전 2500년 이래 지금까지 4500년간 아랍권과 몽골이 호시탐탐 침범의 기회를 노린 쟁투 현장이기도 했다. 세계를 평정한 페르시아제국의 광활한 역사의 흔적이 생생한 이 땅을, 우리는 하나의 이슬람교라는 이유로 아랍권과 한덩어리로 묶어 혼동하거나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항하는 '골치 아픈' 나라로만 인식해 왔다. 페르시아제국에서 시작된 이란 땅의 4500년사(史) 흔적과 의미를 중동전문가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와 함께 돌아봤다.

제국의 명멸:메디아~사산왕조

이란인의 조상은 인도-유럽어족의 아리아인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2500년께 이란 땅으로 남하했다. 이란은 '아리아(Aryan)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7세기, 아리아인들의 부족연합체 성격이던 메디아 왕국은 남부의 아케메네스 왕조에 정복됐다. '페르시아제국'의 시작이었다.

서정민 교수는 "연합체에 불과했던 이란 땅의 도시국가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등장하면서 명실상부한 '제국'이란 체제의 틀과 기초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앙집권체제가 제국을 뒷받침하는 지지대였다.

황야의 제국이던 그곳이 태동기를 거쳐 영화의 부흥기를 맞은 건 다리우스 1세부터다. 인도 북부에서 불가리아까지 점령한 그는 제국의 시대를 열어젖힌다. 즉위 후 반란을 평정한 그는 인도 펀자브 지방,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지를 정벌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스 본토 원정에서 2회 실패하고 3차 원정을 준비하던 도중 생을 마감한다.


전임자에 이어 크세르크세스가 통치권을 장악한다.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통치기에 아케메네스 왕조는 동서로는 히파시스 강에서 리비아까지, 남북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카프카스 산맥과 아랄해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러나 아케메네스 왕조는 국력이 쇠퇴하며 결국 알렉산드로스 휘하의 장군이던 셀레우쿠스에게 왕조의 바통을 넘긴다. 반란에 시달리던 셀레우쿠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파르티아 왕조는 미트라다테스 2세 때 광활한 영토를 장악해 500년을 버텼으나 결국 사산왕조에게 넘어간다. 사산조의 10대 왕인 샤푸르 2세는 70년간 재위했다.


아랍인에게 멸망당하기까지 500년을 버텼지만 결국 제국은 몰락한다.

이슬람의 이식: 정복 이후~셀주크튀르크

중동 문외한에게는 아랍과 이란이 비슷하거나 때로 동의어로 비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서 교수는 "아랍과 이란은 뿌리가 전혀 다르며, 이슬람교라는 공통분모가 아랍과 이란을 비슷한 곳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란에 이슬람이 유입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이름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아랍족은 아리안들과 반목하는 쟁투의 역사를 써내려왔지만 무함마드 사후 초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는 취임하자마자 이란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나간다. 아랍 입장에서는 '반(反)이슬람 세력'이던 페르시아를 무찌른 셈인데 현재 98%에 달하는 이란의 이슬람교인은 이때부터 퍼졌다. 이슬람 기반의 우마이야·압바스 왕조는 차례로 이란에 이슬람을 파종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랍이 지배한 후에도 이란은 아랍권과 문화를 교류하며 성장했다. 이란으로 진출한 아랍권이 이란에 이슬람교를 이식하고 전파했다면 이란은 제국의 체계를 전파했다.

이란 땅 쟁탈전이 끊임없이 전개된 이유는 이란이 중앙아시아에서 북부 터키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특성과 무관치 않다. 서 교수는 "실크로드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나지 않았지만 이란 북부를 통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좁혀서 보면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예들이 인도와 터키 양측을 잇는 제국의 역할을 이어나간 셈"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타히르·사파르·데일람 알리비 등의 왕조가 부상과 몰락을 반복했다. 이들 왕조의 세력은 그리 맹위를 떨치지는 못했다. 한편 압바스 왕조는 튀르크 전사들을 전투용병으로 불러모았는데 이들 왕조가 쇠퇴하면서 튀르크 전사들이 정권의 정점에 선다. 11세기경 셀주크튀르크는 이란의 땅을 장악한다.

유목민과의 융합: 몽골 지배~사파비 왕조

이란으로 스며든 아랍의 지배력이 소멸하기까지는 이슬람세력이 정복한 7세기 중반 이후로부터 500년도 채 가지 못했다. 셀주크튀르크는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훌라구 칸이 일한국이란 이름으로 이란을 치세한 건 1세기 남짓. 훌라구 칸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시리아 지배권을 두고 대립했지만 왕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한국의 바통은 티무르제국으로 이어졌다. 티무르제국은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지배하며 세력권을 넓혔다.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동서무역의 중심지였다.

티무르제국의 한편에서는 셰이크 사피 알 딘이 시아파 이슬람을 받아들인 뒤 추종집단을 기반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15세기 말 집단의 지배권을 장악한 이스마일 1세는 사파비 왕조를 세운다. 그는 이란 전역을 통치하며 샤의 자리에 오른다. 사파비 왕조의 등장으로 아랍이 침입한 7세기 이후 1000년 만에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서 교수는 "제국으로서의 영속성을 살펴본다면 페르시아제국은 고대 이집트 다음으로 가장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문명"이라며 "페르시아는 아나톨리아, 이집트, 이란 등을 독자적으로 통합했던 세계 최초의 제국이라는 역사의 전성기가 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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