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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닉 왈렌다(Wallenda·33) /Ap연합 |
폭포수로 인한 물안개가 자욱한 15일(현지시각) 미 나이아가라 폭포. 세찬 바람과 물방울이 한 사내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 빨간색 점퍼에 기다란 장대를 양 손에 쥐고 균형을 잡은 그는 미국의 스턴트맨 닉 왈렌다(Wallenda·33).
미국에서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548m 길이의 로프가 폭포 위 51m 높이에 설치됐다. 그가 내디디는 쇠밧줄의 지름은 고작 5cm. 로프와 몸을 연결하는 안전장치를 했다지만, 자칫 문제라도 생기면 저 폭포 밑바닥에 수장(水葬)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세찬 바람은 그의 걸음을 방해했고, 바람에 흩날리는 물줄기는 그의 발을 더욱 미끄럽게 했다. 30분 안에 폭포 위를 건너겠다는 그의 도전에 전 세계서 12만 9000여명의 관중이 모였다.
그의 장대 끝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고, 그는 몸에 마이크도 부착했다. 그는 미국 쪽을 떠나며 “이것이 내가 꿈꿔오던 일이다. 난 하늘에 닿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이 일을 하게 됐다”라는 짤막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도전을 시작한 지 25분 만에 극적으로 목표에 다다른 그는 오른손을 번쩍 올리며 환호했다. 심지어 마지막 몇 걸음은 종종걸음으로 쇠밧줄 위를 빠르게 걸어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외줄 타기로 건넌 사람은 그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강폭이 좁고 안전한 하류지점이었고, 게다가 폭포 위를 외줄타기로 건넌 건 그가 처음이다.
그는 도착 뒤 “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 어려워 쉴 새 없이 깜박여야 했고 아래를 보면 엄청난 폭포의 소용돌이가, 위를 보면 아득한 물보라가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폭포 사이의 공간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다 보니 정말 기묘한 느낌이 들었고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염원이 모여 ‘꿈은 이루어진다’는 강한 자신감을 통해 도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도전을 위해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의 허가도 얻어야 했는데, 캐나다 정부가 폭포를 넘는 걸 허용한 건 128년 만이다. 닉은 130만 달러(약 15억)가 들어가는 도전비용을 일부 지원받기 위해 ABC 방송사가 몸에 안전장치를 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을 수용했다.
그는 외줄타기로 이름난 ‘나는 왈렌다스(Flying Wallendas)’ 가문의 7대손이며 증조부가 1978년 묘기 도중 숨지는 등 2명의 조상이 줄타기 도중 사망했다.
한편 그는 다가와 여권을 제시하도록 요구하며 입국 목적을 묻는 캐나다 이민국 직원들에게 봉투에 담긴 여권을 보여주며 “세상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려고 왔다”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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