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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그리움 한 스푼, 위로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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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감독 치앙시우청)에서 ‘요시다 미사키’(나가사쿠 히로미·왼쪽 사진)는 인적이 거의 끊긴 해안가의 낡은 창고를 개조해 ‘요다카 커피’라는 찻집을 연다. 창고는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인데, 어부인 아버지는 8년 전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미사키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들려주던 기타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무턱대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30년전 떠난 아버지 기다리는 딸
“어서 와” “다녀왔어” 따뜻한 풍경


미사키의 찻집 바로 옆에는 손님의 발길이 오래 전에 끊긴 낡은 민박집이 있다. 민박집을 운영하던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했고, 젊은 싱글맘 ‘에리코’(사사키 노조미·오른쪽)가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산다. 에리코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도시의 술집에 나가지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원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술집에 나가는 걸 싫어하지만,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영화에서 아이가 학교에 급식비를 내지 못해 겪는 사건은 우리의 ‘무상급식’ 논란과 잠시 겹친다.

영화는 미사키와 에리코, 그리고 아이들이 커피를 매개로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이 이들의 그리움과 기다림에 함께한다. 땅 끝 바닷가에 외롭게 놓여있는 카페도 주인공 가운데 하나이다. 달빛이 교교하게 내려비치는 밤, 카페 앞 외등 하나가 따뜻하지만 외롭게 켜져 있는 장면은 한 편의 그림임에 분명하다.

영화가 기다림과 그리움을 화면 가득 채워내려 했고, 또 잘 채워냈지만, 미사키의 기다림이 현실감을 주지 못한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4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이미 30년 동안이나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처럼 무턱대고 기다릴 수 있을까. 관객들은 그냥 미사키의 ‘어떤 기다림’을 함께 느껴보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듯하다. 감독은 대만 출신 여성으로, <자객 섭은랑>(2015) 등을 연출한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수제자라고 한다.

영화의 느린 전개와 차분한 분위기는 올해 초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감독 모리 준이치)을 떠올리게 한다. <리틀 포레스트>가 자신을 찾기 위해 도시를 떠나 홀로 산골 마을로 돌아갔다면, 이번 영화는 바닷가 끝으로 홀로 찾아들어간 셈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 영화 가운데 <카모메 식당>(2006)과 <심야식당>(2015), <앙: 단팥인생 이야기>(˝) 등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유독 많은 것은 왜일까. 이들 영화는 일상의 평범한 언어가 깊은 울림과 행복감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어서 와”, “다녀왔어”라는 말이 참 듣기 좋다. 5일 개봉. 12살 이상 관람가.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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