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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국경… 陸路도 그들에겐 '바다'였다

조선일보 이스탄불·체시메(터키)=노석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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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 참사' 그후… 유럽行 난민 동행르포] [1]

터키 버스속 구겨앉은 난민가족 "그리스로" 막연한 희망
"유럽가면 뭐할까" 아빠가 묻자 어린딸 "학교 가고싶어요"

"난민촌은 교도소 같아"… 빵보다 自由 찾아 3만리
탈레반·IS 피해 유럽으로… 버스 얻어타거나 걷고 또 걸어
이스탄불·체시메(터키)=노석조 특파원

이스탄불·체시메(터키)=노석조 특파원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IS(이슬람국가)의 위협을 피해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다. 평화로운 관광지였던 에게해와 지중해 바다, 그리고 유럽과 다른 대륙을 잇는 육로들은 난민들의 '생존 루트'가 됐다.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바다를 건너고, 수백㎞를 걸어 국경을 넘던 난민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탈출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시리아 등 중동 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유럽행 루트인 터키 에게해 연안 지역에서 난민들과 17일 동행을 시작했다. 터키 서부 해안도시인 체시메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일가족 일곱 명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백발 노인부터 예닐곱 살 여자아이까지 양손엔 모두 보따리나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어른도 아이도 옷은 시커멓게 때가 끼어 있었다. 길 뒤에서 버스가 가까워오자 짐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양팔을 들고 흔들며 소리 질렀다. 짙은 선글라스를 낀 운전 기사는 시속 100㎞ 넘게 달리던 버스를 급정거하고 뒷문을 열었다. 출발 전 승객들에게 지급된 손 세정제의 향기로 가득 찼던 버스 안에 별안간 악취가 퍼졌다. 일부 승객은 코를 쥐고 짜증 섞인 탄식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책을 읽거나 자기 볼일을 봤다.


운전 기사는 기사 오른쪽 보조석에 앉은 기자에게 코끝으로 뒤를 가리키며 "시리아 난민들"이라고 말했다. 버스 출발 때부터 터키의 6·25전쟁 참전에 대해 한참 동안 말했던 기사는 "한국인들도 한때 전쟁으로 피란하느라 저러지 않았느냐"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사는 보조 승무원으로 하여금 난민들에게 물 한 통을 갖다주게 했다.

'난민 승객'들에게 다가갔다. 일반 승객석 옆의 바닥과 뒷문 계단 구석 등에 아내와 자녀들을 빼곡하게 앉히고 홀로 버스 통로에 기대 선 백발 남성의 이름은 '압둘라'. 그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라는 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곡절을 소상히 들어보니 틀린 대답이 아니었다. 가족의 원래 고향은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런데 10여년 전 아프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탈레반'이 고향을 점령해 주민들을 탄압하자 국경을 탈출해 시리아 북부에 자리를 잡았다. 가족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시리아에 내전이 벌어지면서 나라가 무정부 상태가 됐고, 살던 마을은 신흥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중에 떨어졌다. "혹시 가족이나 친지들이 IS에게…"라고 말을 걸자 압둘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그 얘긴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터키 서부 해안 도시 체시메에서 출발해 이스탄불로 향하는 버스 뒷문 계단에 시리아 난민 압둘라 가족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노석조 특파원

터키 서부 해안 도시 체시메에서 출발해 이스탄불로 향하는 버스 뒷문 계단에 시리아 난민 압둘라 가족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노석조 특파원

IS를 피해 가족은 다시 많은 이웃과 함께 두 번째 피란을 떠났다. 행선지는 유럽이었다. 가장 압둘라의 얼굴은 의외로 어둡지 않았다. 돋보기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오히려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이스탄불로 가서 그리스로 가는 버스를 탈 계획"이라고 했다. 이스탄불의 오토가르(버스 터미널)에는 그리스·불가리아 국경과 맞닿은 터키 최서북단 도시 에디르네로 향하는 버스가 다닌다. 원래 압둘라 가족은 체시메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유럽으로 밀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압둘라 가족은 최근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터키에서 넘어오는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준다"는 소문이 터키 내 시리아 난민들 사이에 급격히 퍼지자 고무보트 밀항 계획을 접고 이스탄불행을 결심했다. 단지 소문만 믿고 무작정 피란길에 오른 것이다.

압둘라에게 "터키에 있지 왜 유럽으로 굳이 가려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빵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앞서 압둘라 가족은 동남부 시리아 국경도시 가지안테프 일대의 난민 시설에 수용돼 있었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됐지만, 교도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워낙 통제가 심하다 보니 이를 참지 못하고 빠져나오는 난민들이 많다. 압둘라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빠져나오면 다소 자유로워질 순 있어도 하루 빵 한 덩이 먹기도 힘들 정도로 생계가 어려워진다. 결국 이들의 발걸음은 에게해 건너 유럽을 향하게 된다.


압둘라가 밀항 계획을 세우며 머물렀던 체시메 역시 그리스령 키오스 섬과의 거리가 8㎞에 불과할 정도로 유럽과 가깝다. 바다만 건너면 바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난민들이 이 일대에 몰리고 있다. 죽은 채 바닷가에 쓸려와 시리아 난민의 비극을 널리 알렸던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와 그 가족도 그들 중에 있었다. 당시 쿠르디 가족이 고무보트에 올랐다 익사한 휴양지 보드럼은 체시메에서 80㎞쯤 떨어져 있다.

17일 터키 체시메를 떠난 버스가 멈추고 중동 난만 압둘라(버스 좌석 가운데 서 있는 남성)와 식솔 여섯 명이 올라탔다. /노석조 특파원

17일 터키 체시메를 떠난 버스가 멈추고 중동 난만 압둘라(버스 좌석 가운데 서 있는 남성)와 식솔 여섯 명이 올라탔다. /노석조 특파원

피곤과 근심에 절어있던 압둘라의 얼굴은 자녀들을 향할 때마다 생기가 돌았다. 그가 계단 바닥에 있던 막내딸 자하라를 번쩍 안아올리며 "유럽 가면 뭐할까"라고 물었다. 자하라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학교요." 이런 그들에게 "당신 가족들은 이스탄불에 가더라도 국경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도 없고, 설사 230㎞를 걸어 국경에 가더라도 그리스가 받아 주진 않을 것"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대신 이 가족의 행운을 빌며 돈을 조금 쥐여줬다. 압둘라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슈크란(고맙다는 뜻의 아랍어)"이라고 말했다.

이날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터키와 접한 에디르네 국경의 경비를 대폭 강화해 난민 유입을 막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제로 불가리아 내무부는 이틀 새 입국을 시도한 난민 약 660명을 적발해 터키로 돌려보냈다. 시리아인 등 난민 3000여명은 지난 15일부터 사흘째 이스탄불 오토가르 일대에서 "더 이상 쿠르디는 없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터키 정부에 그리스 국경으로 가는 길을 개방해 달라고 호소했다. 시위에 참여한 난민 무함마드 할레비는 "이대로 가다간 제2, 제3의 쿠르디가 계속 생겨날 것"이라며 "더 이상 우린 갈 데가 없다"고 했다. 터키 정부는 이날 난민들이 국경 지대로 가는 버스 표를 사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유럽 측에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이스탄불·체시메(터키)=노석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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