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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와 철수, 양은도시락…"엄마아빠는 이렇게 공부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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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진품 명품 수집이야기-쓰레기? 나에겐 추억' 속 과거 초등학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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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1950~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떻게 공부했을까.

철수와 영희 바둑이가 나오는 교과서, 조개탄 때는 난로 위에 올려놓고 데워먹던 양은도시락, 이 중에 가지고 있는 제품을 동그라미 치시오 텔레비전 전화기 소파...라고 써 있던 가정환경조사서. 그립고 신기한 학창시절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장기가 그려진 교과서, '너는 소다. 너는 소다. 너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소가 되어야 한다'고 일본 천황에의 충성을 세뇌하는 내용이 실린 교과서로 공부했다.

지난달 출간된 책 '진품 명품 수집이야기-쓰레기? 나에겐 추억'((주)한국교과서 출간)에는 이처럼 학교를 둘러싼 추억과 역사가 가득 담겨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학교 끝나자마자 몰려가던 만화방, 가는 길에 사먹은 라면땅과 아이스케키, 학교 대신 몰래 숨어들었던 영화관의 포스터 등 공부에 취미없는 아이들의 추억도 방울방울 담겼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부모님의 학창시절로 가보자.

'너는 소다. 너는 소다. 소는 주인에게 순종한다. 소는 주인에게 순종해야 여물도 많이 받아먹고 귀염을 받는다. 너는 소다. 너는 소다.' 일제는 자신을 '주인'으로, 우리나라 사람을 '소'로 비유한 교과서로 어린이들에게 '순종'의 세계관을 심어주려 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권 1권 (1922) ©전갑주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권 1권 (1922) ©전갑주


지금의 초등학교는 '보통학교'로 불렸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일제는 우리의 국어는 '일본어'로 조선어는 '조선어'로 구별해 일본어를 중심으로 가르쳤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더욱 가혹해진 즈음인 1938년부터는 조선어시간을 제외하곤 학교에서 조선어 사용이 금지됐다.


일본어로 '일장기 만세 만세' 라고 써있는 1930년대  교과서 ©전갑주

일본어로 '일장기 만세 만세' 라고 써있는 1930년대 교과서 ©전갑주


해방된 후 군정청 학무국은 조선어학회와 진단학회 학자들에게 의뢰해 각각 '한글첫걸음'과 임시'국사교본'을 발행했다. 이는 해방후 최초의 한글교과서와 역사교과서이다.

©전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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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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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인 1946년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와 그의 제자 박창해는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를 편찬한다. 첫 단원에서 끝 단원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철수가 일상생활에서 듣고 말하는 것을 담아 내용이해가 쉽다.

해방후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  ©전갑주

해방후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 ©전갑주


전쟁도 학교교육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자 정부는 부산으로 임시수도를 옮겼다. 폭격으로 무너진 폐허 위에서도 날이 좋으면 노천학교가, 그후 미국이 군용천막을 원조한 후에는 천막학교가 열렸다.


한국전쟁 중 노천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전갑주

한국전쟁 중 노천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전갑주


천막학교  ©전갑주

천막학교 ©전갑주


전쟁이 끝나고 살림살이가 팍팍한 시절. 식량 자급자족이 안되자 정부는 혼분식을 장려했다. 말이 장려였지 실제로는 강제였다. 교사들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의 도시락을 점검하고 '혼분식 조사' 일지를 작성했다. 아이들은 친구 밥의 보리를 꾸어다가 자신의 흰 밥 위에 박아넣기도 했다.

혼분식 표어와 혼분식 조사 일지  ©전갑주

혼분식 표어와 혼분식 조사 일지 ©전갑주


1970년대 초등학교의 2인용 책걸상. 가운데 선을 긋거나 책가방을 올려 짝이 넘어오지 못하게 '영역표시'를 했다.

책걸상  ©전갑주

책걸상 ©전갑주


1970~80년대 학생들은 급식이 없었다. 보온도시락도 흔하지 않아 대부분이 양은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겨울이면 조개탄 난로 위에 올려 데워먹었다. 선생님은 제자들의 도시락이 모두 덥혀지도록 목장갑을 끼고 쌓아올린 도시락의 위치를 자주 바꿔야 했다.


양은도시락 ©전갑주

양은도시락 ©전갑주


학기초에 선생님은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오라고 했다. 주소, 가족관계는 물론 재산보유상태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이 중에 가지고 있는 제품을 동그라미 치시오. 텔레비전 전화기 소파..."

1959년 가정환경조사서  ©전갑주

1959년 가정환경조사서 ©전갑주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답은 '오자미'다. 콩 등의 곡물을 넣은 작은 헝겊 주머니인 이것은 운동회 때 바구니를 두개 붙인 박을 터뜨리는 데 등에 쓰였다.

오자미 ©전갑주

오자미 ©전갑주


일부 어린이와 청소년은 학교보다는 만화방과 영화관을 열심히 다니며 만화책과 영화로 꿈을 키웠다.

만화가게  ©전갑주

만화가게 ©전갑주


각종 만화  ©전갑주

각종 만화 ©전갑주


하굣길의 주전부리도 추억에서 빠질 수 없다. 아이스케키와 뽀빠이, 짱구. 아이스케키 상자를 메고 다니는 아저씨를 불러 돈을 내면 상자에서 아이스케키를 꺼내준다. 유제품이 아니라 주로 색소를 넣은 설탕물로 만든다.

©전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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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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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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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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