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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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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선택] 미라클 벨리에·기적의 피아노
청량한 가을바람에 음악영화 두 편이 실려왔다. 27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감독 에릭 라티고)와 9월 3일 극장에 걸리는 다큐멘터리 '기적의 피아노'(감독 임성구). '미라클 벨리에'는 올해 나온 음악영화 가운데 가장 서정적이고 '기적의 피아노'는 허구가 아닌 실화(實話)라서 공감의 깊이가 다르다. 지난해 '비긴 어게인'처럼 깜짝 흥행(342만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라클 벨리에

'미라클 벨리에'는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치즈를 만들어 파는 벨리에 가족에게로 관객을 데려간다. 벨리에 가족은 고교생 폴라(루안 에머라)를 뺀 아빠·엄마·남동생이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폴라는 파리에서 온 전학생 가브리엘에게 반해 합창부에 가입하는데, 한 번도 소리 내어 노래한 적 없는 그녀의 천재적 재능이 발견된다. 하지만 폴라는 파리에 있는 합창학교 오디션을 볼 기회 앞에서 망설인다. 세상과의 유일한 끈인 자신이 집을 떠났을 경우 가족에게 찾아올 혼란을 걱정하는 것이다.

‘미라클 벨리에’에서 오디션곡을 부르는 폴라(루안 에머라)./ 진진 제공

‘미라클 벨리에’에서 오디션곡을 부르는 폴라(루안 에머라)./ 진진 제공


무엇보다 음악이 강점이다. 프랑스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발탁된 루안 에머라의 가창력은 황홀하다. '비상' '사랑의 열병' 등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은 그 자체로 서정이 풍부하고 이야기와도 잘 포개진다. 한국인은 노래로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싶어한다. 초등학생들마저 생일 파티를 하고 "2차는 노래방!"을 외칠 정도니까. 반쯤 죽거나 잊혔던 프랑스 뮤지컬들이 최근 10년간 한국에서 회춘한 배경도 감성적인 노래의 힘이었다.

'미라클 벨리에'는 이달 중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돼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 않는 힐링 계열이다. 비뇨기과나 시장에서 엄마·아빠 대신 딸이 수화(手話)로 통역하는 장면들은 그늘지기는커녕 명랑하고 쾌활하다. 다른 길, 다른 삶을 향한 폴라의 꿈이 반대와 공포를 이겨내고 날아오르는 장면은 더없이 아름답다. 발레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 버전과 같다. 아빠가 폴라의 목울대에 손을 대고 노래를 '듣는' 대목, 폴라가 오디션장에서 '비상'을 부르는 대목은 다시 봐도 명장면이다.

루안 에머라에게 세자르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안긴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730만 관객을 모았다. 105분, 12세 관람가.

‘기적의 피아노’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예은이와 엄마.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적의 피아노’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예은이와 엄마.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적의 피아노

세 살 때부터 스스로 피아노를 익히며 음악 천재라 불린 예은이는 안구가 없이 태어난 시각장애인이다. '스타킹'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목받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첫발을 내딛기조차 쉽지 않다.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낙방하고 만다. 하지만 세상을 두려워하는 예은이 곁에는 누구보다 예은이를 믿어주는 엄마, 예은이를 알리기 위해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아빠, 그리고 새로 만난 훈남 피아노 선생님이 있다. '기적의 피아노'는 그런 예은이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 풍경을 360도로 훑으며 꿈과 좌절, 기쁨과 슬픔을 담담히 담은 다큐멘터리다.


예은이가 "엄마, 왜 나만 안 보여요?"라고 물을 때,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눈알이 없는 하마를 빚을 때, 보행 연습을 하며 제자리를 맴돌 때 이 다큐멘터리는 볼 수 없다는 것의 불편과 공포, 서러움을 담아낸다. 눈이 안 보이면 귀가 더 예민해지는 법이다. 예은이는 새 소리, 바람 소리를 좋아한다. 비가 많이 온 여름에는 '비들의 행진'이라는 곡을 즉흥적으로 작곡해 피아노로 연주한다. 예은이는 그럴 때 가장 반짝인다. 악보에 없고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음악이다.


장애인 영화는 아니다. 꿈을 향해 가는 아이와 그 아이를 지켜주는 엄마의 이야기다. '미라클 벨리에'와 달리 눈물 자국이 많다. 고구마 줄기를 다듬으면서도 예은이 피아노 소리를 듣고 "다시! 다시!"를 외치는 예은이 엄마는 그러나 예은이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도 풀려나온다.

카메라에 담긴 예은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모습이고 이젠 중학교 1학년이 됐다. 임성구 감독은 "어머니가 장애인인 딸 예은이를 어떻게 밝게 키워내는지, 모녀 관계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80분, 전체 관람가.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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