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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 TV는 어떻게 이미지 세탁소가 되었나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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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아무나 출연해도 된다면, 아무나 방송국해도 된다

고승희=돈벌이 앞에선 문제의식도 없다

이혜미=불편해도 화제성만 있으면 괜찮아?

정진영=X은 포장해도 X이고,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아나운서로 성공하기 위해선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2010년 7월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개그콘서트’(2011)의 인기코너 ‘사마귀유치원’의 최효종을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를 고소하는 등 수차례 같은 행동을 남발해 ‘고소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12년 총선에선 한 자릿수 득표율로 낙마한 이후 정계를 떠났다. 강용석은 이 때까지 ‘비호감 정치인’이었다.

강용석의 이미지 변신은 TV를 통해 극적으로 이뤄졌다.

2012년 케이블 채널 엠넷 ‘슈퍼스타K4’ 서울 예선에 출전, “아이들에게 진지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나왔다”며 잘 하지도 못 하는 노래를 불렀다. ‘고소남’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진정성’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같은 해 tvN은 강용석에게 이름을 걸고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줬다. ‘강용석의 고소한 19’였다. 2011년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남’으로 출연한 캐릭터를 가져와 다양한 정보를 담은 각종 랭킹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2013년엔 JTBC ‘썰전’을 통해 화려한 변신이 시작됐다. 정치 시사를 논하는 프로그램에 전 국회위원이 출연해 보수의 편에 서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 없이 개진했다. 강용석은 급기야 케이블과 종편을 아우른 대표 방송인으로 떠올랐다. ‘유자식 상팔자’(JTBC)에서 세 아들과 함께 하는 피곤한 아빠의 일상을 보여줬고, ‘수요미식회’(tvN)에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박학다식한 면모를 뽐냈다. 지난 18일까지 강용석은 ‘썰전’을 비롯해 ‘강적들’(TV조선), ‘연예토크 호박씨’(TV조선), ‘강용석의 고소한19’에 출연 중이었다. 2012년 이후 단발성 게스트를 제외하고서도 14편의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숫자(9편)가 압도적이다.


종편과 케이블TV는 이미지 세탁소를 자처했다. 이미 물의를 빚었던 강용석을 기용, 그를 둘러싼 논란꺼리를 웃음의 소재로 활용했다. 때로는 구박덩어리가 됐고, 때로는 저격수가 됐다. 정치인이자 변호사인 이력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에 활용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썰전’은 강용석을 통해 정치시사를 예능으로 풀어내며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며 “강용석은 분명히 효용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출발 당시부터 우려했던 이미지 세탁이라는 부분으로 되돌아간 사례가 됐다. 이미지 세탁으로 덮으려는 이미지는 결국 열릴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여성 블로거와의 불륜 의혹으로 진실공방을 벌이는 소송전의 장본인이 돼서야 강용석은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그 과정에서 JTBC ‘썰전’의 대응방식은 단연 낙제점이었다. JTBC는 tvN과 TV조선이 강용석의 하차를 결정했을 때에도 “논의 중”이라는 입장만 내세우며 줄타기를 했다. 제작진은 이후 지난 20일 강용석이 방송활동 중단 의사를 밝히자 “자진하차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입장을 전달했다. 강용석을 스타 방송인으로 키운 채널로서는 당장의 대체제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방송가 후발주자인 종합편성채널은 지상파, 케이블과 경쟁하기 위해 출범 당시부터 고군분투했다. 주부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떼토크’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태생을 살린 정치 시사 토크로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마구잡이로 쏟아낼 수 있는 판을 마련했다. 종편 채널은 물의를 빚은 온갖 연예인과 비리ㆍ논란 정치인의 복귀 창구로 변신했다. 이미지 세탁소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JTBC를 등에 업고 성공한 방송인으로 안착, 또 다시 구설에 오른 강용석 사태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이 면죄부를 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물의를 빚은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이목을 끄는 도구로 활용하고, 그들을 통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게 했다. 시청자로 하여금 내재된 스트레스와 불만을 대신 표출해주는 인물로서 대리만족까지 불러왔다”며 “과격하게 이야기하는 것조차 하나의 캐릭터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주며 시청률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봤다.

종합편성채널이 가진 상업적 특성이 큰 역할을 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PD는 “출연자 캐스팅은 제작진의 관점에 따라 선택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케이블이나 종편이 조금 더 쉬운 복귀 통로가 돼준다”며 “지상파의 경우 파급력과 시청자가 요구하는 공익성, 도덕성 등의 잣대로 인해 논란의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에 부담이 크다. 때문에 아예 캐스팅 리스트 자체에 올리지 않는데, 종편 채널 등에선 더 쉽게 접근해 화제성을 얻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종편 채널에선 논란이 될 만한 인사를 섭외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해당 인물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준 뒤,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 경제적 이윤을 얻었다. 시청률 상승과 광고매출의 증가다.

목적이 앞서니 방송의 책무는 실종됐다. 논란으로 먹고 사는 방송에선 품위도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방송을 통해 출연자들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꾸며지고 포장된 이미지, 잘못된 이미지라 할지라도 특정 인물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최진봉 교수)는 우려도 나온다. 강용석에겐 비호감 정치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말 잘 하는 똑똑한 방송인ㆍ평범한 아빠의 이미지가 씌워졌다. 강용석은 단계를 밟아가며 자신의 이미지를 새로이 구축했고, TV를 통해 공공연히 정계 진출 야심까지 뱉는다.

최 교수는 “후발주자인 채널이 상업적 목적을 위한 전략만을 앞세우다 보니 방송 전체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의도적이라기 보단 이슈화를 목표로 한다. 종편 출범의 가장 큰 부작용”이라며 “이로 인해 여론 조성에 악영향이 미치고, 방송의 품위도 하향평준화된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세탁소’로 전락했으나, 경제적 목적을 바탕으로 한 채널의 전략이 우위에 있기에 채널 스스로의 각성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최 교수는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잣대로 심의 제재나 징계 부분이 활성화돼야 하며 방송통신위원회, 크게는 정부가 종편 재승인 심사 평가에서 이를 고려해 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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