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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오전 회의를 마치고 정회가 선포된 뒤 청문회장을 찾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황 후보자와 이 원내대표는 경기고 72회 동기로 '40년 지기'다. 2015.6.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서울=뉴스1) 김현 기자 = "얄궂은 운명이다"
최근 고교 동창 3명의 엇갈린 행보가 정치권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서울의 고교 비평준화 마지막 기수인 1976년 경기고 72회 졸업생이다. 이 원내대표와 황 후보자는 고교 3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했다.
이들 3명은 지난 8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상황'을 연출했다. 1명은 '행정부의 2인자'인 국무총리에 내정된 후보자로, 1명은 이를 검증하는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으로, 다른 1명은 후보자의 과거 행적을 비판하는 증인으로 각각 등장했다.
물론 살아온 길은 달랐다. 고교 시절 황 후보자는 1~3학년 모두 반장을 지냈고, 전교학생회장격인 학도호국단의 연대장을 맡았다. 반면 이 원내대표와 노 전 의원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리던 학생이었다. 고교 졸업 이후 대학이 갈린 이들은 검사와 인권변호사, 노동운동가의 길을 각각 걸었다.
40년을 돌아 고교 동창 3명은 인사청문회를 어떻게든 넘어가야 하는 입장과 이를 막아서는 입장으로 나뉘어 외나무다리에서 맞닥뜨렸다. 마치 영화 '친구'에서 각자의 조직을 위해 싸웠던 유오성과 장동건처럼.
이 원내대표와 노 전 의원은 친구인 황 후보자를 향해 "친구로서 걱정이다"(이종걸), "친구를 위해서도 이런 일을 안 맡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노회찬)라며 총리행(行)을 말리는가 하면, "총리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분이 국가중책을 맡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황 후보자가 박근혜정부의 '황태자'로 등장하기 전까진 3명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검사 황교안'과 '정치인 이종걸'은 가까운 사이였다. 이 원내대표는 황 후보자가 노무현정부 시절 두 차례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누락했을 때 "옷 벗지 말고 조금 견뎌라"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이 원내대표는 검사장 승진심사 전 당시 천정배 법무장관과 황 후보자간 전화 통화를 주선하기도 했던 터다.
이에 비해 황 후보자와 노 전 의원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인해 검사와 피의자로 만난 악연이 부각되고 있지만, 황 후보자가 2007년 법무부에 재직 당시 노 전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내는 등 고교 동창으로서의 우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친구를 막아서야 하는 이들의 고뇌도 엿보인다. 특히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인 이 원내대표로선 더욱 그러해 보인다. 이 원내대표측은 12일 뉴스1과 통화에서 "이 원내대표가 황 후보자와 친하긴 친하지만, 살아온 인생이 다르고 공인이기 때문에 고민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친구관계이다 보니 원내대표와 부적격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오는 더 원칙적인 입장이 느껴진다"면서도 "그래도 친구를 반대해야 하는 인간적인 고민까지야 없겠느냐"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 이 원내대표와 황 후보자가 친구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혜택'을 입을 것이라는 시각이 상당한 것도 이 원내대표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게 만드는 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가 12일 여당 단독으로 채택된 만큼 앞으로 임명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이 원내대표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나아가 이들 친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진영을 달리한 친구더라도 치열한 대결상만 펼쳤던 것은 아니다. '영원한 맞수'로 불렸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는 1957년 서울대 법대 동기로, 1961년 고등고시 합격 후 1988년 13대 총선 당선까지 '닮은 꼴' 인생 역정을 걸었다. 몸담은 정당이 달랐지만, 법무장관과 정당 대표 등 정치이력도 같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마누라만 빼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정계에 발을 내디딘 후 비슷한 시기에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맡았다. 박 전 의장은 '비유화법', 박 전 대표는 '직설화법'으로 상대를 향해 날선 신경전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친분은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TV토론을 성사시키는 등 굵직한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두 사람은 항상 "공격적 맞수가 아니라 협력적 맞수"라고 서로를 치켜세웠다.
이처럼 비슷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두 사람은 사유는 달랐지만 지난 2012년 2월9일에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전 의장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인한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박 전 대표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전 대표는 박 전 의장에 대해 "의장직을 잘 수행해서 명예롭게 마감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본인이 여러 사태를 감안해서 결정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gayun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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