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44)이 <은교>를 내놓는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상상화한 작품이다. 명망 높은 70대 시인 ‘이적요’(박해일)와 10대 여고생 ‘은교’(김고은), 이적요의 30대 제자 ‘서지우’(김무열)를 통해 매혹·질투·도발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 감독은 “이적요의 순정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정 감독에게 <은교> ‘재창작’에 대해 들었다.
-‘은교’와 ‘지우’의 정사로 파국이 인다.
“베드신 수위를 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은교가 (현재보다) 더 나서면 경험 많은 여자로 비춰지고, 지우가 거칠어지면 폭력적 정사가 된다. 그럴 경우에는 ‘적요’가 극도의 배신감이나, 은교를 보호하기 위해 훔쳐보는 데 그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다. 쳐다보는 게 고통스러워 벗어나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몸은 꼼짝 못 하는, 정사가 끝난 뒤에 무엇을 감행하게 하는 수준의 베드신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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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은교’의 감독 정지우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베드신 수위를 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은교가 (현재보다) 더 나서면 경험 많은 여자로 비춰지고, 지우가 거칠어지면 폭력적 정사가 된다. 그럴 경우에는 ‘적요’가 극도의 배신감이나, 은교를 보호하기 위해 훔쳐보는 데 그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다. 쳐다보는 게 고통스러워 벗어나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몸은 꼼짝 못 하는, 정사가 끝난 뒤에 무엇을 감행하게 하는 수준의 베드신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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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교>(영화 포스터) |
“은교는 지우랑 (섹스)하러 간 게 아니다. 우발적 섹스다. 적요는 은교가 지우 랑 능동적으로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라스트신에서 납득하게 된다.”
-베드신이 <해피엔드>(1999)와 비견된다. 노하우가 뭔가.
“노하우라…. 정직하게 찍는다. 배우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눠 목표를 공유한다. 베드신 수위는 야한 정도보다 감정의 문제가 중요하고 전후 흐름으로부터 자연스러워야 한다.”
-노출을 가리는 장치를 하지 않은 것 같다.
“한 걸로 안다. 했다. 기본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으면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데, 촬영감독이 앵글 잡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정 감독은 곽경택 감독의 처남이다. 정 감독의 아내, 곽 감독의 여동생은 ‘바른손’ 영화사업부의 곽신애 본부장이다.
-사위가 또 파격 성애를 그려 장인이 걱정한다고 들었다.
“아니다. 정반대다. <은교> 원작 구입부터 시나리오 작업 단계 단계마다 장인(피부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했다. 노인의 심정, 언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많은 말씀을 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난해 장모 칠순 잔치에서 술 드시고 흥이 오른 장인 친구께서 <해피엔드>의 베드신에 대해 물으셨다. 뜻밖의 GV(관객과의 대화)가 됐다. 내가 말씀 드린 뒤에 장인께서 새로 나올 <은교>를 보면 더 공감할 거라고 부연하셨다. 장인께선 모니터로서 프로다. 창작인의 정서를 지녔다. 시나리오도 몇 편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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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은교’의 감독 정지우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재작년 늦여름이다. 박(범신) 작가를 찾아갔을 때 이미 여러 번 영상화 제안을 받았는데(원작은 작가의 블로그에서 2010년 1월 8일부터 3월 4일까지 연재됐고 책은 2010년 4월 6일에 출간됨) 진전이 안 됐더라. 실제 70대 배우 캐스팅, 이적요 나이는 내리고 은교는 올리고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한 것 같더라. 우리 역시 관건은 이적요를 어떻게 만드느냐였다. 애초부터 해당 나이 안팎의 배우 캐우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올드보이> <미녀는 괴로워> <박쥐> 등의 송종희 분장감독과 협의, 특수분장을 하기로 했다. 박해일도 송 감독과 협의를 마친 상태에서 만났다.”
촬영 당시 박해일은 매일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8시간 동안 특수분장을 했다. 어느 날 박해일은 김고은과 함께 분장을 한 채로 홍대 앞을 걸었는데 알아보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김고은이 신인이어서 홍대 앞 젊은이들에게 박해일과 김고은은 여느 할아버지와 손녀였다.
-원작의 어떤 점에 가장 끌렸나.
“원작은 대단히 솔직한 소설이다. 죄송한데 나도 나이 먹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은교>를 읽으면서 이적요와 동체가 됐다. 처음부터 ‘이적요의 순정에 관한 영화’로 구상했다.”
-타이틀롤이 은교인데 영화의 중심은 이적요다.
“시사회 후 ‘은교의 영화’라는 말도 들었다. ‘위태로운 10대의 성장을 그렸다’고 하더라. 원작은 (200자 원고지) 1500장 분량이다. 영화는 100여 장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7~8개월 했다. 원작과 많이 다르다. 원작상의 은교 성장과정을 많이 생략하면서 은교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은교>는 ‘은교는….’이 아니라 이적요가 ‘은교’라고 쓰고 말한 것으로 보면 된다.”
-삼각관계가 새롭다.
“삼각형의 두 꼭지점이 가까워지려면 한 점이 불안해 진다. 그렇듯 적요와 지우가 은교를 밀치면 은교가, 적요와 은교가 가까워지면 지우가, 은교와 지우가 밀착될 때에는 적요가 흔들린다. 밀려난 한 명은 질투심 등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 영화는 그런 상황을 교차 반복한다.”
-<모던 보이>에 이어 박해일과 함께했다.
“한 마디로 박해일을 사랑한다. 그는 순수하고, 영민하고, 최선을 다해 소임을 완수하는 배우다. 그래서 그와 작업해본 감독들은 또 하고 싶어 한다. 그가 이적요를 해줘 연출 의도가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박해일이 대사도 직접 했다.
“성우의 후시녹음, 성우와 박해일의 목소리를 교묘하게 합성하는 방안 등을 두루 검토했고 시뮬레이션도 했다. ‘박해일’이 아니라 ‘박해삼’인 경우가 많았다. 브래드 피트 주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등을 참조한 끝에 박해일에게 맏기로 했다. 그의 연기력을 믿고. 관객의 기대치가 제각각인 데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는 점은 감수하기로 했다.”
-엔딩 크레디트에 ‘박해일 대역’이 나온다.
“70대 이적요의 손이나 발, 몸 크로즈업 장면 등에 그 연배를 기용했다. 목소리 사전 테스트 작업 때 참여한 성우도 있다.”
-완전 신인 김고은 캐스팅은.
“김고은(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2년 휴학) 전에 300명을 만났다. 가능성을 두고 몇 차례 만난 배우도 있다. 김고은을 처음 봤을 때 ‘이 친구다!’라는 느낌이 왔다. 외모도, 독백 대사를 할 때 감정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 감정에 따라 얼굴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그 다음날 투자자들과 함께 오디션을 보고 결정했다. 김고은은 개봉 이후 스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 안중에 없어 보였다. 배역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연기 열정이 돋보였다. 그 점은 은교가 할아버지 이적요를 만나고 생활할 때 드는 궁금증·동경 등과 닿아 있다. 기대한 대로 김고은은 은교를 제대로 투영해 냈다.”
-해외판을 만들면 달라지나.
“달라지더라도 베드신은 아니다. 이적요가 은교와 지우의 정사를 목격한 뒤 작업할 때 청년 이적요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직접 하기도 하는 걸 찍었다. 박해일의 눈빛·표정이 인상적이다. 불가피하게 편집했는데 나중에 DVD에는 넣고 싶다.”
이적요는 “젊음은 상이 아니고 늙음은 벌이 아닌데….”라고 읊조린다. 이적요의 회한처럼 순정은 나이를 초월한다. 은교의 싱그러움에 매혹된, 이적요의 그 순정은 그러나 나이의 울타리에 갇힌다. 정 감독은 사인(sign)을 하면서 “(사랑은) 늦기 전에, 늦어도…”라고 썼다.
<글 배장수 선임기자·사진 김영민 기자 cam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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