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와 맞서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거리는 멀다. 스무살이 되면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지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마주할 뿐이다. 영화 ‘스물’의 치호(김우빈 분), 동우(이준호 분), 경재(강하늘 분)도 그렇다. 27세에 요절한 커트 코베인을 떠올리며 ‘인생이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다’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안달한다. 그러다가도 결국 초심(?)으로 돌아와 술잔을 기울이고, 여자 얘기에 키득거린다. 관객은 그 모습이 나와 내 친구의 과거 같아서 웃음을 터뜨린다.
‘비생산적’인 이십대를 보냈다고 털어놓은 이병헌 감독(36)은 “그 나이 대에 꿈을 찾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정표를 잃은 청년들을 움직이는 건 서점에 널린 자기계발서도,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도 아니다. 결국 스스로 깨지고 부딪혀야 한 발짝을 뗄 수 있다. 흘러가는대로 가다보면 어딘가엔 당도해 있다는 걸,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은 안다. ‘스물’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그 또래들이 건네는 위로주(酒)이자, 청춘을 보낸 세대가 서랍에서 꺼내보는 일기장 같은 영화다.
▶"인생의 반환점에서 이건 너무 무게감이 없어" (스무살을 맞아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치호의 한탄)=이병헌 감독이 낯선 대중이 많겠지만, 그의 ‘말맛’은 충무로에서 정평이 나 있다. ‘과속스캔들’, ‘써니’의 각색을 맡아 코미디 감각을 뽐냈다.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2012)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으며 연출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스물’이 그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 등 ‘대세’ 청춘 스타들을 한데 모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비생산적’인 이십대를 보냈다고 털어놓은 이병헌 감독(36)은 “그 나이 대에 꿈을 찾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정표를 잃은 청년들을 움직이는 건 서점에 널린 자기계발서도,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도 아니다. 결국 스스로 깨지고 부딪혀야 한 발짝을 뗄 수 있다. 흘러가는대로 가다보면 어딘가엔 당도해 있다는 걸,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은 안다. ‘스물’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그 또래들이 건네는 위로주(酒)이자, 청춘을 보낸 세대가 서랍에서 꺼내보는 일기장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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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환점에서 이건 너무 무게감이 없어" (스무살을 맞아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치호의 한탄)=이병헌 감독이 낯선 대중이 많겠지만, 그의 ‘말맛’은 충무로에서 정평이 나 있다. ‘과속스캔들’, ‘써니’의 각색을 맡아 코미디 감각을 뽐냈다.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2012)로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으며 연출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스물’이 그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 등 ‘대세’ 청춘 스타들을 한데 모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생각했던 배우들이기도 하고, 세 친구 모두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여줬어요. 다들 그런 캐릭터를 한 번 맡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배우로서 일하는 데 필요한 흐름과도 맞았던 것 같아요. 스타들이긴 하지만 이십대 중반의 어설픔이 조금은 남아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병헌 감독의 바람대로 ‘드림팀’은 꾸려졌지만 우려는 있었다. 세 배우 모두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현장에서 불협화음을 빚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물론 기우였다. 이 감독은 “다들 밖에서 멋있는 척 하더니, 이런 수다쟁이들이 없더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즐거워했다.
캐스팅이라는 큰 산을 넘은 뒤, 촬영 과정에서도 혼란은 있었다. 지금까지는 콘티 없이 현장에서 머릿속의 그림을 끄집어내 작업하기도 했지만, 상업영화 현장은 달랐다. 콘티는 스태프들과의 ‘약속’이었다. 수정 사항이나 추가 컷이 생기면 일일이 얘기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병헌 감독은 투자자들에 의해 영화의 콘셉트가 바뀌는 등 신인 감독들이 겪을 법한 고충은 비켜갈 수 있었다. 다짜고짜 시나리오에 ‘돈가방 하나 던져 넣는’ 우격다짐식 압력 없이, 제작사와 배급사 등은 이 감독의 연출 방향을 존중하고 지지해줬다. 관람가 등급도 15세 이상으로 결정된 덕분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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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인 치호가 감독에게 묻는 말)=‘스물’의 치호는 이병헌 감독의 20대 시절과 공통 분모가 있다. 치호처럼 ‘멍 때리는’ 일상을 보낸 건 아니지만, 학교는 재미가 없어 잘 가지 않았다. 한동안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프리터족으로 지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인생 경험과 사람을 평가하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거짓 섞인 말투와 표정이 보이더라고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사람들의 정서 등이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알바 생활을 하다가 졸업할 때 쯤엔 치호처럼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그 때 시나리오를 써야지 마음 먹었어요.”
이병헌 감독의 필력이 쌓인 계기도 재기발랄한 입담의 그답게 독특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의 연애 편지를 많이 써줬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야설(야한 소설)’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고. 그는 “제가 너무 독보적인 존재라, 우리 학교 뿐 아니라 옆 학교 친구들도 감히 야설 쓰는 걸 시도하지 못했다. 독보적인 분야는 그거 하나 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는 좋아했지만 본격적인 영화업에 종사하게 될 줄은 그도 몰랐다. 글 쓰는 건 자신 있었기 때문에 ‘술값 한 번 벌어보자’며 내놓은 시나리오가 덥석 팔리면서 길이 열렸다. 몇 편의 시나리오를 다른 감독에게 주면서, ‘내가 쓴 건 내가 연출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다 친구의 아파트를 빌려 단편 ‘냄새는 난다’(2009)를 찍었다. 스태프들이 빠져나간 뒤 아파트에 홀로 남은 그는 ‘이제 연출을 준비해보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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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에, 그리고 또 그 너머에 무엇이 있건 두려울 것 없다." (인생의 새 관문 앞에서 경재의 내레이션)=이병헌 감독은 어느덧 충무로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스물’에 대한 평가에 따라 ‘실력파’로 거듭날 수도 있다. 시험대에 오른 이 감독이 기대하는 반응은 소박하지만 분명했다. 영화 한 편을 봤다기 보다 친구와 수다를 떨고 나온 듯한 느낌, 영화에서 내 친구를 본 듯한 재미를 주는 것이다. 스무살을 떠나보낸 관객들에겐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는 코미디 연출에 일가견이 있지만, 의외로 ‘그녀에게’,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같은 멜로영화도 좋아한다. 다만 진지한 멜로를 연출하는 건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아직까진 마음껏 ‘장난’을 쳐보고 싶은데, 그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영화를 찍는다면 즐거움보다 스트레스가 클 게 뻔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익숙한 영화 현장의 풍경과 영화감독의 이야기에 자주 눈길을 준다. ‘힘내세요, 병헌씨’에 이어 ‘스물’에도 영화 촬영장이 담겨 있다.
“앞으로도 대화가 중심이 되는 작품에선 영화감독 소재가 자주 나올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어서 재미를 주기도 해야하지만, 저도 재미 있어야 하잖아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면 영화감독 주인공이 ‘내 얘기도 잘 모르는데 남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해요. 그 대목에서 ‘그렇지, 내 얘기를 하는 게 재미있지’ 싶었어요.(웃음)”
그렇게 이병헌 감독의 지난 시간은 영화의 소재로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과거 아르바이트 경험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웠고, 잉여 생활은 시나리오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했다. 경주마처럼 달리는 청춘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시행착오를 겪고 방황했던 시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스물’ 속 청춘들은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우왕좌왕한다. 그 과정을 거쳐 하나의 길에 들어선 이 감독은 “이제 기회만 주어진다면 쉴 생각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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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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