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부채에 새긴 겸재 정선의 ‘수묵 서정’을 만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壬子菊秋(임자국추) 寫眼前所見(사안전소견) 元伯(원백)” <임자년 국화 피는 가을에 눈 앞의 광경을 그리다>

18세기 조선 후기의 화선이었던 겸재 정선이 50대 중반부터 말년을 보낸 인곡정사(仁谷精舍ㆍ종로구 옥인동 20번지 일대 추정)를 그린 ‘안전소견’에는 이와 같은 글이 써 있다. 휘엉청 달 밝은 음력 9월 잎 떨어진 나무와 마당의 국화 등을 통해 가을의 정서를 듬뿍 담아낸 작품이다.

안전소견에 그려진 겸재의 집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인곡유거도’에 나오는 집과도 동일하다. 간송 소장품이 여름날 풍경이라면 이 작품은 가을날 풍경을 담았다.

겸재 정선, 안전소견, 지본수묵, 23×59㎝ [사진제공=마이아트옥션]

접첩선(摺疊扇 ㆍ쥘부채)에 새긴 겸재 정선의 수묵 서정을 만날 수 있는 전시와 경매가 동시에 열려 화제다.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한 ‘간송문화전 3부’는 겸재 정선을 중심으로 한 진경산수화전을, 고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마이아트옥션(종로구 관훈동)은 12월 메인경매를 통해 겸재의 부채를 각각 선보이고 있다.

겸재 정선, 금강내산, 지본수묵, 28.2×80.5㎝ [사진제공=간송미술관]

18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제 15회 마이아트옥션’ 메인경매에는 겸재의 안전소견이 나온다. 문헌 기록을 토대로 보면 안전소견은 겸재가 인곡정사로 이사온 1년 뒤쯤인 임자년 1732년 가을에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간송 소장품보다 7~8년전 앞서 그려진 작품으로, 간송 인곡유거도의 쥘부채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마이아트옥션 경매에 추정가 7000만원~1억2000만원선에 출품됐다.

겸재 정선, 도산서원, 지본담채, 21.2×56.3㎝ [사진제공=간송미술관]

간송문화전 진경산수화전에서도 겸재의 쥘부채 작품이 등장했다. 내금강의 전경을 담은 ‘금강내산’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쥘부채 선면 위에 가득 그려낸 ‘풍악전면’, 그리고 퇴계 이황의 유적 도산서원을 그린 작품이 그것이다. 금강내산과 풍악전면은 수묵만으로 암산 금강의 골기(骨氣)를 선면 위에 대담하고도 섬세하게 그려 넣은 작품이다. 또 도산서원에서는 초록빛으로 물든 산천 한 가운데 조선시대 서원의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마이아트옥션의 경매 프리뷰 전시는 17일까지, 간송문화전 진경산수화전은 내년 5월 1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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