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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 20만~40만명 될 것"… 조폭처럼 구·시 단위로 조직화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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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짱' 밑 피라미드 구조
"왕따 시달리기 싫다" 우등생·부잣집아이들도 가입… 다시 폭력 가해자로 악순환
대구의 중학생 A군은 2010년 3월 입학한 지 2주 만에 2학년 '일진(一陣·학급 또는 학년 전체의 우두머리)'들에게 불려 갔다. 겁을 먹은 A군에게 선배들은 "덩치가 제법 크다" "앞으론 네가 1학년 일진이야, 알겠지?" 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A군은 나중에 "일진이 되려면 싸움에서 이기거나, 너처럼 선배들에게 지목당하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일진이 된 A군은 1학년 사이에서 '왕'처럼 행세했다. 친구들 누구도 A군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대들 수 없었으나, A군도 선배 일진들 앞에서는 벌벌 떨었다. 어느 날 2학년으로부터 '지시 사항'이 떨어졌다. "조용히 돈을 걷어서 갖고 와라." A군은 주위 아이들을 시켜 1학년 모든 아이에게서 돈을 조금씩 빼앗아 선배에게 '상납'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를 수십 대 맞기 때문이다.

전국 20만~40만명 규모로 추산되는 '일진회'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왕따 폭력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들은 여러 학교 일진끼리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른 아이들 위에 군림한다. 일진회는 구(區)나 시(市) 단위로 '지역 연합'을 결성하기도 하며, 초등학교 3~4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연계된 경우도 있다.


특정 학생을 아무리 괴롭히거나 폭행한다고 해도, 이 네트워크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다른 학생들은 이 사실을 교사나 어른들에게 알리기 두려워하기 때문에 학교 폭력이 묻히는 경우가 많다. 일진들은 '감정빵'(그냥 기분 나쁘다며 때리는 일)이나 '물갈이'(후배들을 길들이기 위한 집단 구타) 등의 폭력을 통해 이 네트워크를 유지한다.

이렇게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지위'에 오른 일진들은 학교 안팎에서 온갖 비행(非行)을 저지른다. 왕따 폭력이나 금품 갈취, 빵셔틀(강제로 빵을 사오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 등 다양한 유형의 학교 폭력 중 상당수를 이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S중학교에서 하급생의 금품을 갈취하다 '부모에게 일렀다'며 보복 폭행까지 한 사건도 'S패밀리'라는 일진회 조직이 저지른 일이었다.

2010년 충북 청주에서는 중학교 졸업생과 재학생 70여명이 팬티만 입고 시내 한복판을 질주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고교생 일진이 후배들에게 저지른 이른바 '졸업빵(졸업식 때 휘두르는 폭력)'이었다.

"여자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강요하거나 성(性) 상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대구의 중1 여학생 B양은 중3 남학생 두 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모두 일진 중에서도 우두머리인'일짱'이었고, 다른 일진들을 시켜 B양을 빈집으로 끌고 와 폭행한 것이다. 자기와 똑같은 옷을 입은 학생을 보면 '감히 내게 도전한다'고 여겨 폭행하거나 옷을 빼앗는 일도 있다.

최근에는 싸움을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성적이 좋은 학생이나 가정이 부유한 학생, 잘 노는 학생이나 외모가 뛰어난 학생 등 속칭 '잘나가는 아이'도 일진회에 가입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등생도 스스로 왕따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센 척'하다가 일진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들은 대개 겉으로는 공부나 학교생활에서 별문제가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찾아내거나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6일 학교 폭력 근절 종합 대책에서 밝힌 대로, 학교 내 일진회 조직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정부의 대책은 일진에 의한 학교 폭력이 발생한 뒤 사후 처벌에만 집중돼 있고, 예방책은 거의 없다"며 "일진과 일반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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