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그는 공부랑 담쌓고 놀았다. 강력범죄랑 본드 부는 것만 빼놓고, 노는 애들이 하는 건 이 사람도 다 해봤다.
그는 중학교 때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경기를 보고 유도를 시작했다. 용인대 유도학과가 목표였다. "근데 고3 첫 수능 모의고사에서 400점 만점에 70점이 나왔어요."
담임이 어이없어했다. '큰일났다' 싶어 불같이 공부했다. 그해 연말 수능에서 300점을 받았다. 본인이 제일 놀랐다. 내친김에 재수할 땐 더 열심히 해봤다. 새벽 6시에 입시학원에 가서 그다음 날 새벽 2시에 왔다. 365점까지 올랐다.
그는 중학교 때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경기를 보고 유도를 시작했다. 용인대 유도학과가 목표였다. "근데 고3 첫 수능 모의고사에서 400점 만점에 70점이 나왔어요."
담임이 어이없어했다. '큰일났다' 싶어 불같이 공부했다. 그해 연말 수능에서 300점을 받았다. 본인이 제일 놀랐다. 내친김에 재수할 땐 더 열심히 해봤다. 새벽 6시에 입시학원에 가서 그다음 날 새벽 2시에 왔다. 365점까지 올랐다.
명문대는 못 갔다. 내신이 15등급 중 15등급이었다. 인천전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영가편입과외 주인장 황종찬(33) 대표가 "그때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양자역학 전공해서 석학이 되려면 천재라야 해요. 수능이랑 대학 편입시험은 달라요. 아인슈타인 아니라도 노력하면 올라요."
◇"어른이 과외 하실 분!"
대학 편입시험은 어른들이 보는 시험이다. 황 대표는 대형 학원 일색이던 그 시장에 처음으로 과외 상품을 들고 나왔다. 2006년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150만원 들고 창업했다. 지금은 전국 8개 지점에서 교사 20명이 월평균 500명을 가르친다. 2013년 매출이 5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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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찬씨는 9년간 사업하면서 느낀 점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헛돈 쓰지 말 것, 시장 변화에 따라 수업 내용과 수익 배분 비율 등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다듬어 갈 것.” /오종찬 기자 |
창업할 때 '이 사업, 된다'고 판단한 근거가 두 가지였다.
첫째, 학생 수요가 넘쳤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일수록 영어 때문에 고생해요. 대형 강의에서 남들은 다 알아듣는데 혼자 못 따라가고 헤매거든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그룹과외를 받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둘째, 교사 공급이 충분했다. "기를 쓰고 공부해서 명문대에 편입한 분들이 아르바이트를 못 구해 애를 먹어요.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명문대 합격한 선생님을 찾지, 명문대 편입한 선생님을 찾진 않거든요. 편입 준비하는 학생들은 시각이 달라요. 자기랑 똑같은 과정을 거쳐 명문대에 합격한 선생님이 자기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주는 걸 좋아해요."
◇"인테리어에 돈 쓰지 마라"
창업 초기엔 양쪽을 연결해주는 업무만 했다. 지금은 강의실도 제공하고 학사 관리도 한다. 과외비는 대형학원 수강료와 비슷하거나 약간 싸다(주 6시간 기준 33만원). 과외 교사와 학원이 반씩 나눈다.
인테리어에 돈 쓰지 않는 게 철칙이다. 교통 좋은 곳 허름한 상가 건물을 빌려서 광나게 청소한 뒤 책상 놓고 '끝' 이다. 가벽을 세우거나 부수는 공사를 할 때, 황 대표도 목수들과 나란히 연장을 잡는다.
그도 한때 새로 지점 낼 때 수천만원 들여 인테리어를 한 적이 있다. "뭘 잘 몰랐죠." 그는 월세 35만원짜리 창문 없는 사무실(7㎡)에서 1인 기업으로 출발했다. 처음 석 달 동안 수익이 월 800만~1000만원 났다. 금방 부자 될 줄 알고 직원을 4명이나 뽑았다. 그 뒤 학생이 뚝 끊겼다. "알고 보니 편입 시험 일정에 따라 성수기(3~9월)와 비수기(11~2월) 격차가 거의 '폭포' 수준이었어요." 직원들 내보낼 때 '잔액 0원' 통장을 보여주며 사죄했다.
◇왜 돈 벌고 싶었나
군 복무 시절, 그는 틈틈이 노트에 창업 아이디어를 적었다. 총 300개쯤 된다. 그중 하나가 편입 과외다. 전문대 다니면서 편입 시험을 준비할 때 느낀 애로사항을 사업으로 연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물으면 "사업하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무역회사를 했다.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강아지 7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부터 강아지가 하나 둘 사라졌다. "그러다 어머니가 개장수를 불러 마지막 강아지를 파는 장면을 봤어요. 아버지 사업이 망할 때죠."
무역회사를 닫은 뒤, 아버지는 화곡동 재래시장에 두 평짜리 수입 잡화점을 열었다. 온 식구가 가게 뒷방에서 잤다. 시장통은 소란했다. 집 안에선 아버지가 술 마시고 어머니와 다퉜다. 집 밖에선 야채가게 주인과 생선가게 주인이 육박전을 벌였다. '커서 돈 많이 벌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is와 am이 어떻게 다른가"
정작 대학 다닐 땐 경영서보다 철학·문학에 푹 빠져 지냈다. 공강 시간마다 '시시포스의 신화' '아Q정전'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동해·남해로 무전여행도 갔다. 그는 "책 읽으면서 돈 벌고 싶은 '이유'가 달라졌다"고 했다. "10억원을 벌어서 생활을 해결하고 가족을 챙긴 다음, 읽고 싶은 책을 무진장 읽으면서 사는 것"이 꿈이 됐다. 책 읽는 순간 빼고 가장 뿌듯한 순간은 "진학 상담 하러 왔을 때 'is와 am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던 학생이 1년 뒤 '원하는 학교에 붙었다'며 펑펑 울 때"다.
[인천=김수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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