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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올림픽] 꼬마 연아의 빨간스케이트화 전설 만들다

매일경제 정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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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디오스, 김연아 (上) / 한번의 점프를 위한 천번의 실패 ◆


2014년 2월 21일. '피겨퀸' 김연아(24)가 빙판 위를 떠난 이날은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한국에도 피겨스케이팅을 잘하는 선수가 있네'라는 이미지로 국민에게 처음 다가왔던 김연아는 이제 '김연아'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국민의 가슴을 적시는 전설이 됐다.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김연아의 발자취를 정리했다.

"김연아의 천재성을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김연아의 연습을 딱 사흘만 보여주고 싶다."

'피겨퀸' 김연아(24)의 전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서가 본인 저서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에서 했던 말이다. 오서의 말처럼 김연아 어린 시절은 '연습벌레 김연아'로 요약된다.

김연아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인 1997년 피겨스케이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 계기는 아이스쇼 '알라딘'. 또래 아이들이 화려한 의상과 낭만적인 스토리에 열광할 때 김연아는 빙판 위를 수놓는 배우들의 점프와 회전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고 한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를 향한 꿈을 심어준 것이 알라딘이라면 확실한 목표를 심어준 사람은 김연아의 우상 미셸 콴이다. 이듬해 열린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콴을 본 김연아는 홀로 '동계올림픽 놀이'를 하면서 콴의 동작과 표정 연기를 완벽하게 따라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김연아의 보물 1호인 '빨간 스케이트'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발목 보호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지지해주는 단단한 스케이트화를 신는다. 하지만 김연아는 주위에서 버린 '헌 스케이트'를 신고 피겨스케이팅에 입문했다.


종잇장처럼 얇은 이 스케이트화는 어린 김연아의 발목을 제대로 지지해주지 못했다. 이는 김연아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버텨내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고, 김연아 어머니 박미희 씨는 "첫 스케이트화가 부실해서 김연아 연기가 안정적인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발전하던 김연아는 다시 한번 거대한 '벽'을 만난다. 바로 숙명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24)다. 지금이야 마오를 라이벌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김연아 기량이 압도적이지만 마오는 당시 김연아에게 처음 느껴본 좌절이었다.

이때 김연아를 새로운 도약으로 이끈 이가 전 코치였던 오서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다. 2006년 5월 김연아는 캐나다에서 3개월 동안 진행한 전지훈련에서 오서와 윌슨을 만났다.

본격적으로 김연아와 손을 잡은 오서와 윌슨은 김연아에게 미소를 되찾아주는 일에 '올인'했다. 이들의 노력은 김연아의 애절하면서도 발랄한 연기력으로 이어졌다. 스케이팅 기술에 탁월한 연기력까지 더해진 김연아에게 적수는 없었다. 운명의 2010년 2월 26일. 김연아는 '우상' 콴도 이루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도 모자라 세계신기록 228.56점까지 작성하며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가슴을 적시고 '전 세계의 연인'이 됐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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