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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한민국] 공공기관 또 지방 이전? 서울은 혁신, 지방은 방치되는 역설

조선일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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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옮겨 지방 살아났나

공기업 떠난 서울은 혁신 만개
버려진 혁신도시 또 2차 이전?
‘나눠먹기’ 멈춰라, 지방 부활 요원
나주 혁신도시 전경./연합뉴스

나주 혁신도시 전경./연합뉴스


지금 서울 삼성역 인근을 내려다보면 이곳이 미래 서울의 심장이라는 확신이 밀려온다. 영동대로 지하에서는 삼성역 확장, GTX-A 및 환승시설 등을 포함한 복합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코엑스 맞은편에는 현대차 그룹의 49층 빌딩 세 동이 들어선다. 조금 떨어진 탄천 너머의 잠실 종합운동장 일대는 돔구장 건설과 더불어 초대형 컨벤션센터와 호텔 건축으로 분주하다. 2030년대 초 모든 사업이 완료되면 한강부터 코엑스를 잇는 거대한 업무 및 상업 공간이 새롭게 탄생한다.

경부고속도로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만나는 판교IC 근처는 몇 년 사이에 첨단 빌딩 숲으로 변모했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판교 테크노밸리 사업은 약 43만㎡에 이르는 제2테크노밸리가 최근 완공됐고, 이제 제3테크노밸리까지 속도를 내고 있다. 조금 떨어진 분당 오리역 주변 구미동에는 성남시 주관으로 제4 테크노밸리가 추진되며, 첨단 기업 수천 개와 인재 수십 만 명이 상주하는 거대한 지식 클러스터가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한전 떠난 삼성동 화려한 업무지구로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서울과 수도권 집중을 상징하는 이 눈부신 풍경을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2003년부터 추진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다. 서울 삼성동에 있던 한국전력과 관련 계열사들이 전남 나주로, 한국감정원이 대구로 각각 이전하면서 서울시는 이곳을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한다는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토지 용도 변경의 대가로 서울시에 납부하는 공공 기여금 1조9827억원이 해당 사업의 재원이 됐다.

경기도 역시 1973년 국영기업 지방 분산 일환으로 성남시 금토동에 터를 잡은 한국도로공사가 김천으로 옮겨가면서 그 부지에 제2·3테크노밸리 조성이 가능했다. 주상복합 아파트 용도로 매각될 예정이던 도로공사 부지를 첨단 테크노밸리로 바꾸는 데 투쟁한 사람이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었다.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들어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지니스콤플렉스(GBC) 조감도. 49층 3개동 규모의 GBC 빌딩이 들어선다./서울시 제공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들어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지니스콤플렉스(GBC) 조감도. 49층 3개동 규모의 GBC 빌딩이 들어선다./서울시 제공


◇16년간 153개 기관 지방으로 옮겨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숱한 우여곡절 끝에 2019년 12월 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충북 혁신도시 이전을 끝으로 16년 만에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총 153개 기관이 지방으로 내려갔지만 그 효과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 상반기 중 2차 이전 대상을 확정하고 2027년부터 이전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농협중앙회, 수출입은행, 한국마사회 등 최대 350개 공공기관이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자, 지자체들은 벌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공공기관 유치에 뛰어들었다. 지방 출신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법률안 발의 등을 통해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2차 공공기관 유치 경쟁이 불붙는 동안 정작 1차 이전으로 만들어진 10개 혁신도시는 쓸쓸히 방치되고 있다. 정주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충북 진천·음성의 충북혁신도시에는 산후조리원은커녕 소아과·안과도 없다. 자녀 교육 때문에 인근 대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존 대도시에 흡수된 부산·대구 혁신도시들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지만 혁신과 성장의 거점 조성이라는 당초 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멀다. 지역 산업과의 연계 무시, 이전 공공기관과 지자체의 협력 부족 같은 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다. 여기에 지역 인재 의무 채용이 특정 대학 졸업자 비율을 높여 파벌을 형성하고 부처 간 협업을 저해하는 부작용마저 일어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2차 공공기관 이전, 나눠먹기 안돼

삼성동과 판교의 눈부신 스카이라인은 ‘집적’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공공기관이 떠난 자리가 되레 대한민국 최고의 혁신 거점이 된 이 아이러니를 직시해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이 집적의 효과를 통해 성장과 효율을 달성했다면 지방 역시 활로를 찾아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이 진정으로 지역 균형 발전과 혁신 거점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면, 기존 혁신 도시에 내실 있게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小)지역주의에 매몰돼 기관별로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공공기관들이 전리품으로 간주돼 나눠 주기 식으로 무의미하게 흩뿌려진다면 지방의 부활은 요원하다. 늦은 밤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피곤한 얼굴로 기차를 기다리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의 희생과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한 보람찬 노동이 되도록 현명한 선택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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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인재 30% 우선 채용... 특정대 쏠림으로 파벌 생겨

수도권에서 온 공공기관은 신규 직원 채용 시 이전한 지역에 소재한 대학 졸업자를 30%씩 의무 채용하는 ‘이전 지역 인재 채용 제도’를 운용한다. 지역 일자리 창출, 지방 대학 경쟁력 강화,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제한된 인적 자원이 특정 대학의 쏠림을 초래하며, 이로 인한 협업 저하, 조직 내 파벌 형성, 다양성 저하 등 부작용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2014~2024년 신규 입사자 가운데 이전 지역에 위치한 특정 대학 출신 비율이 1위인 기관은 20곳에 달했다. 전체 재직자 중 특정 대학이 10%를 넘는 기관은 2곳, 5~10%인 기관은 9곳이었다. 특정 대학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에 대한 경계심이 나타나고 있다. 감사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927명 중 3094명(62.8%)이 그렇게 답변했다.

중장기적으론 인사 운영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감사원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062명(62.1%)이 ‘특정 대학 쏠림으로 인해 향후 협업 저하, 파벌 형성 등이 우려’된다고 했다.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내부 경고음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전 지역 인재 범위를 더 넓게 하거나 의무 채용 비율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하지만 현실은 의무 채용 비율을 더욱 높이도록 하는 법안이 다수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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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소멸 막으려던 스페인 공공기관 보냈지만 효과 의문

지방인구 감소는 유럽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 전체 면적의 40%를 차지하는 농촌지역 인구는 지난 10년 동안 8.3%(약 800만명) 감소했다. 이에 비해 도시인구는 6%(1000만명) 증가했다. 지방 소멸 문제를 고민하는 대표적인 유럽 국가는 스페인이다.

스페인 인구는 지난 50년간 3420만 명에서 4960만 명으로 36% 급증했다. 하지만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광활한 내륙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이 지역을 ‘텅 빈 스페인(España vacía)’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3000개 마을에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으며, 향후 20년에 걸쳐 많은 농촌 소재 지자체가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된다.

반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주택가격 및 임대료 상승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도시에 자본과 관광객이 몰리면서 자본수익률이 높아지고 더 많은 자본이 집중되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공공기관 지방분산 화두를 던지며 논쟁을 촉발했다. 수도 마드리드에 공공기관의 90%, 국가 공무원의 49.6%, 공공부문 직원의 29%가 집중된 상황을 개선해야만 지방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격렬한 논쟁 끝에 모든 신설 기관은 지방에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앙 정부기관의 지방 이전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신설된 인공지능국, 국가보건공중국 등이 지방에 자리하게 됐지만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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