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읽다 보면, 문서 한가운데 세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해외자본 유입을 위한 ‘세제지원 3종’, 국내 자금의 장기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생산적 금융 ISA’, 그리고 ‘한국판 IRA’로 불리는 국내생산촉진세제까지. 환율 불안에 대응한다며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만들고, 개인투자자가 환헤지 상품에 가입하면 해외주식 양도소득에서 일정 비율을 공제해주는 특례도 포함됐다. 정책 메뉴판이라기보다는 세제 백화점에 가깝다.
선진국의 재정당국이 가진 정책 도구를 크게 나누면 네 가지다. 첫째 국고라는 ‘금고 기능’, 둘째 성장과 경기 대응을 위한 거시정책, 셋째 예산을 통한 재정정책, 넷째 이를 떠받치는 조세정책이다. 한국은 한때 여기에 ‘금융정책’까지 더해 경제사령탑의 실질적인 힘을 쥐었다. ‘재무부 이재국장이 부르면 은행장들이 즉각 달려왔다’는 일화, 이른바 ‘은행장 소집권’은 관치금융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이 바뀌면서 예산은 기획예산처로, 금융은 금융위 체제로 유지됐다. ‘재정경제부’ 손에 남은 칼은 거시정책·국고·세제다. 국고는 원래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나라 살림의 뒷단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기서 성장전략의 공격적 수단을 뽑아 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거시정책은 중요하지만 추상적이다. 리더의 운용 실력과 정치적 권위에 크게 좌우된다. 일선 부처와 시장이 따르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가 약해졌다는 점도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남은 정책 도구인 ‘세제’가 전면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재정당국이 가진 정책 도구를 크게 나누면 네 가지다. 첫째 국고라는 ‘금고 기능’, 둘째 성장과 경기 대응을 위한 거시정책, 셋째 예산을 통한 재정정책, 넷째 이를 떠받치는 조세정책이다. 한국은 한때 여기에 ‘금융정책’까지 더해 경제사령탑의 실질적인 힘을 쥐었다. ‘재무부 이재국장이 부르면 은행장들이 즉각 달려왔다’는 일화, 이른바 ‘은행장 소집권’은 관치금융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이 바뀌면서 예산은 기획예산처로, 금융은 금융위 체제로 유지됐다. ‘재정경제부’ 손에 남은 칼은 거시정책·국고·세제다. 국고는 원래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나라 살림의 뒷단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기서 성장전략의 공격적 수단을 뽑아 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거시정책은 중요하지만 추상적이다. 리더의 운용 실력과 정치적 권위에 크게 좌우된다. 일선 부처와 시장이 따르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가 약해졌다는 점도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남은 정책 도구인 ‘세제’가 전면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조세정책이 본질적으로 ‘창’이 아니라 ‘방패’에 가깝다는 데 있다. 조세정책의 제1 목표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수 중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감면·공제 중심의 정책은 그 자체로 조세체계의 정합성과 신뢰를 흔드는 ‘비용’부터 안고 출발한다. 더구나 조세는 역사적으로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조세법률주의 아래에서 세율·공제·감면의 큰 틀은 반드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용은 수정되기 쉽고 시행은 늦어진다. 환율이 출렁이고 자금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국면에서, 세법은 계절처럼 느리게 작동한다. 그래서 조세정책을 단기 처방으로 앞세우면, 효과는 늦고 불확실한 반면 왜곡과 불신의 대가는 먼저 치르게 되기 쉽다.
RIA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로 들어오면 달러 공급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거래-국내 자산을 줄이고 해외주식을 늘리는 흐름-까지 동시에 존재한다면, 순(純)달러 공급 효과는 불확실해진다. 정책은 ‘순효과’로 평가받는데, 세제는 종종 ‘유인’만 강조하고 ‘상쇄’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 세수만 줄고, 정작 순달러 공급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 환율 상황이 지금과 유사하다는 보장도 없어, 정책의 적시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두 번째 문제는 ‘타기팅의 어려움’이다. 예산은 지원 대상을 사전에 특정해 집행할 수 있다. 반면 세제는 소득·자산·매출 같은 기준을 만들어놓고, 사후에 그 기준의 충족 여부로 혜택을 준다. 그래서 “누구를 지원하는가”가 구조적으로 불분명해진다. 그런데도 최근 흐름은 예산을 대신해 세제를 ‘주요 정책수단’으로 끌어올리는 쪽에 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세지출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예산’이라는 점이다. 예산은 항목별로 드러나고, 집행 과정에서 감사·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감면·공제는 세법 조문 속에 숨어 있고, 실제 비용은 신고가 끝난 뒤에야 드러난다. 세수추계가 부실하면 국민은 물론 국회도 ‘얼마를 쓰는지도’ 감 잡기 어렵다. 성장은 구호로 말하더라도, 비용은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숫자가 없으면 책임도 묻기 어렵다.
남는 핵심 질문은 리더십이다. 재정경제부가 쥔 남은 도구가 세제라면, 부총리는 조세정책을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정책을 조정·총괄할 설득력과 조정력을 보여야 한다. 더구나 성장경제비서관에 재경부 출신이 아닌 교수 출신이 임명되면서, 과거처럼 ‘한 손에 모인 권한’으로 밀어붙이던 방식은 더 어렵고 덜 유효해졌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세제를 앞세우기보다 규제·예산·산업정책을 한 묶음으로 조율하는 조정력, 그리고 성과가 없는 감면은 과감히 정리하는 자기절제가 필요하다. 조세정책이 방패를 넘어 창이 되려는 순간, 그 칼끝이 세수와 신뢰를 함께 벤다는 사실을 새 정부의 경제팀은 잊지 말아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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