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파리에서 열린 여성 단체들의 성범죄 항의 시위 |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하원이 부부의 성관계 의무를 법적으로 부정하는 방향의 입법을 검토중이라고 일간 르몽드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
좌파인 녹색당, 공산당을 비롯해 중도, 우파 의원 등 총 136명은 지난달 초 하원에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프랑스 민법 제215조는 배우자들이 "상호 간에 공동생활을 할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엔 그 어디에도 '성관계 의무'라는 개념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이 조항을 근거로 부부가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여겨져 왔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마리-샤를로트 가랭 녹색당 의원은 "아직도 많은 사람은 '공동생활'이 '공동 침대'를 의미한다고 잘못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법안 발의자들은 해당 민법 조항에 '공동생활'이 "배우자에게 성관계를 가질 의무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명시하자고 제안했다.
부부간 성관계 의무 여부를 명확히 하는 것은 향후 가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간 일부 프랑스 판사는 배우자 중 한 명이 성관계를 거부한 경우 이를 결혼 의무 불이행으로 보고 이혼 소송에서 유책 사유로 판단했다.
지난해 1월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이 같은 프랑스 법원의 판단이 인권 침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ECHR은 프랑스 법원이 남편과 성관계를 거부한 여성에게 이혼 책임을 물은 건 여성의 사생활과 신체적 자율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결혼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미래의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자동으로 의미하지 않는다"며 "결혼 관계에서도 성관계는 개인의 자유이며 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인권재판소 내부 |
하원 의원들은 이런 ECHR 판단에 근거해 민법 215조에 이어 부부간 이혼에 관한 조항에도 "성관계의 부재나 거부는 이혼 유책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할 예정이다.
가랭 의원 등은 이 민법 개정안이 실용적 측면에 더해 교육적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형법상 '강간'의 정의에 '비동의' 개념을 도입한 것에서 더 나아가 부부간 '동의' 필요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가정 내 강간 문제를 공론화한다는 취지다.
여론조사 기관 IFOP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설문 결과(프랑스 성인 3천105명 대상)를 보면 응답 여성의 57%가 배우자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24%는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답했다.
두 질문에 대한 남성 응답자의 비율도 각각 39%와 14%로 나타났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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