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당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에 대해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김준일 | 시사평론가
왜 장동혁은 한동훈을 제명하려 하는가. 탄핵 반대와 찬성 세력 간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고, 두 사람 간의 개인적인 원한에서 이유를 찾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배신자 프레임’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끊임없이 배신자를 찾아온 보수 정치가 한동훈을 새로운 배신자로 지목했다. 배신자 돌리기의 다음 차례는 누가 될 것인가.
민주진보 진영에서 배신자란 표현이 안 쓰인 것은 아니지만 남용되지는 않았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였을 때 김대중 지지자들이 원망은 했을지언정 노무현을 배신자라 부르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안희정·이재명 후보가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격렬하게 다툴 때도 패권주의와 야합이란 단어가 나왔을 뿐 상대를 배신자라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에선 타협적 정치 노선에 대한 비유적 단어로 사쿠라, 수박 같은 단어가 배신자보다 자주 쓰였다. 반면 보수 진영에선 배신자란 단어가 난무한다. 단어의 쓰임을 넘어 배신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왜일까.
우익 권위주의 연구에 따르면 보수우파는 정부나 지도자를 향해 높은 수준의 존중과 복종을 보이고, 권위가 정한 규범을 위반하는 집단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박정희 대통령 같은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도 이유가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보수 성향은 진보에 견줘 공포와 불안을 주관하는 편도체가 더 활성화되어 있다. 위협에 대한 공포심이 크기 때문에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와 사회적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여섯가지 도덕 기반 중 진보엔 배려, 자유, 공정 세가지만 기준으로 작동하지만 보수엔 이에 더해 충성심, 권위, 고귀함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즉, 보수에서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은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로서 용인되지 못한다.
여기에 한국적 특수성이 더해졌다. ‘배신자’란 단어가 보수 정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가리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했을 때부터다. 정치인 박근혜는 아버지가 김재규에게 피살되는 것을 봤으니 내부의 배신자라면 치를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이 말 한마디가 불러올 후폭풍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박근혜·윤석열 두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면서 강성 지지층은 보수의 몰락이 배신자 때문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국회의원들이 민주당과 야합만 하지 않았어도 두 지도자가 탄핵당하지 않았을 거란 주장이다. 이들은 2020년 4·15 총선에서 103석에 그친 미래통합당의 역사적 패배를 놓고도 새로운 해석을 하기 시작한다. 황교안 당시 당대표가 배신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여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서 패배했다는 거다. 이에 부응하듯 황교안은 2023년 3월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 4·15 총선을 앞두고 자유우파의 대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 유승민, 이준석 등 바른미래당 세력과 통합을 추진했지만 그 통합이 천추의 한이 됐다. 그런 실수는 절대로 다시 하지 않겠다.”
이제 배신자 논란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정치의 목적 자체가 배신자 처단이 되어버렸다. 한명의 배신자를 처단하면 새로운 배신자를 찾아 헤맨다. 끊임없이 새로운 숙주를 찾는 바이러스와 같다. 정치인들은 배신자 바이러스에 전염될까 봐 벌벌 떨고 있다. 내가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상대를 배신자로 비난한다. 배신자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었던 유력 정치인만 해도 유승민, 김무성, 주호영, 김성태, 오세훈, 이준석, 나경원, 원희룡, 홍준표, 안철수, 한동훈, 장동혁 등 부지기수다.
절망적인 것은 강성 지지자를 설득해 난국을 타개할 리더십 있는 보수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침묵하는 영남토호 정치인과 강성 지지층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부화뇌동 정치인, 그리고 배신자로 지목당한 정치인만 있을 뿐이다. 보수가 사회의 주류일 때는 진보 인사를 영입하며 영역을 확장했지만 파이가 작아지니 외부 수혈도 사라지고 경쟁자를 쳐내려는 욕구만 남았다. 이 와중에 이재명 대통령의 보수 침공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동훈을 쳐낸 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지지층은 또 누구를 새로운 배신자로 지목할까. ‘배신자 무간지옥’에서 헤어나올 길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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