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시중은행의 간판. 연합뉴스 |
전성인 |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4개 대형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담합해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했다며 총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잘했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 담당자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한다.
이 사건의 발단은 윤석열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에 시중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을 쌓아 올렸고, 이에 힘입어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은 대략 분기에 1조원씩 이익을 냈다. 4대 금융지주를 합하면 연간 16조원 정도 된다.
당연히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2월13일 수석비서관회의와 15일의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연이어 은행권의 돈놀이를 질타하면서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로 타당했다. 은행산업이 아무리 태생적인 과점 산업이라고 해도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맘대로 독과점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도중에 윤 대통령이 ‘은행산업을 완전경쟁 체제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쳇말로 ‘너무 나간 것’이었다. 지식의 일천함과 상황 인식의 안이함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어쨌든 공무원들이 급히 움직였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 티에프’를 통해 은행 경쟁 촉진과 구조 개선을 다루겠다고 나서고, 공정위 역시 ‘은행과 통신시장 경쟁 촉진 티에프’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금융위와 공정위 양 날개로 추진하던 은행산업 경쟁 촉진은 초장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금융위가 한국에도 실리콘밸리 은행 같은 특화은행을 도입해서 은행산업 내 경쟁을 촉진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실리콘밸리 은행이 빛의 속도로 망해 버림으로써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제 남은 날개는 오직 공정위뿐.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2023년 2월27일부터 3월3일까지 6개 시중은행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의 실효성이나 성과에 대해 초기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자 장사라는 문제의식에 부합하려면 금리나 수수료 담합을 밝혀내야 하는데, 금융감독 당국이 늘 쳐다보고 있는 이런 변수를 은행들이 감독 당국 몰래 뒷구멍으로 담합해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고 상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디(CD) 금리 담합으로 호된 수난을 겪었던 아픈 기억도 생생하던 시점이었다. 설사 그런 담합이 존재하더라도 금융 현실에 어두운 공정위가 과연 은행의 반대 논리를 극복하고 담합과 소비자 후생 감소를 입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대박이 터졌다. 담보인정비율 정보교환 행위가 드러난 것이었다. 담보인정비율이란 쉽게 말해 차입자가 제공하는 담보의 가치를 하나의 숫자로 평가한 것을 말한다. 대출 실무에서 대기업이 관련된 거액 대출의 경우 대출을 구간별로 나누고 각 구간의 부도 확률을 따로 계산해서 대출 조건을 산정하지만, 중소기업 담보대출이나 기타 규제와 연관된 대출에서는 확률분포의 기댓값이라는 숫자 하나를 이용해서 작업하기도 한다. 그게 담보인정비율이다. 그런데 은행들이 이 수치를 서로 교환하면서 이를 근거로 대출 업무에서 담합을 했다는 것이 이번에 밝혀진 것이다.
이런 정보교환 행위는 담합의 발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에 대한 명시적인 금지 조항이 없어서 공정위가 처벌에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2020년 12월29일 공정거래법이 전부 개정될 때 ‘정보교환 행위’ 그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이 제40조 제1항 제9호로 신설되었다.
개정 법률이 2021년 12월30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일부 은행은 정보교환 행위에서 발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4개 시중은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정보교환 행위를 하다가 이번에 철퇴를 맞은 것이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시중은행들이 당연히 행정소송으로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거대 로펌들도 모두 들러붙을 것이다. 두가지가 걱정된다.
하나는 법원이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공정거래법 사건에서 지나치게 기업 편향적이었다. 이번에는 개정 법률의 입법 취지를 십분 이해하여 전향적인 판결을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공정위 퇴직 관료들이다. 산하기관이 별로 없는 공정위 특성상 퇴직 후 갈 곳은 사실상 로펌뿐이다. 가서 하는 일은 뻔하다. 아마 이 사건에도 수많은 퇴직 관료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전직 상사의 압박을 견디고, 자신의 퇴직 후 미래를 걸고 외롭게 소송을 이끌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그게 바람직한 관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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