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
원론적으로 맞지만 초점이 인사검증에만 맞춰진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무직 고위 공무원 인선은 대통령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인선 의지가 강하다면 검증의 그물은 듬성듬성해지기 쉽고, 관심이 덜하면 그물이 되레 촘촘해지는 구조다. 과거 인사 참사 때마다 검증이 문제로 제기됐지만 바뀌지 않는 걸 보라. 그물을 치는 사람의 문제이지 그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이번 사태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싱크홀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이 구멍은 도대체 얼마나 넓고 깊은가, 구멍을 메우는 게 가능하긴 한가.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그 싱크홀의 한 단면이 부정청약이다. 누구나 정부를 믿고 아파트를 청약한다. 일말의 기대에도 어김없이 광탈하지만 그래도 다음번을 기약하는 것은 청약제도가 정당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부정청약 의혹은 그 믿음을 깼다. 2024년 7월 결혼한 장남을 부양가족에 올려 로또청약에 당첨됐고 그 직후 장남이 분가했다는 게 대략의 스토리다.
이혜훈이 청약했던 2024년 하반기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이미 실태를 점검해 390건의 부당행위를 적발했다. 각종 부정행위를 정리한 보도자료까지 냈지만 이혜훈은 빠졌다. 왜일까.
청약당첨자가 계약을 마친 뒤 국토부는 제출 서류를 토대로 부정 여부를 추정한다. 판단자료가 문서뿐이니 어렵고 어설프다. 당국자가 든 사례를 옮기자면 이렇다. '서류상 성인 가족이 4명인데 집이 22평이고 방이 3개라면 부정청약일 가능성이 높다. 다 큰 아이들을 같은 방에 재우기는 어렵지 않나. 그런 상식에서 볼 때 이상하다 싶은 것들을 수사 의뢰한다.'
이혜훈이 바로 그런 유형 같지만 그건 또 아니다. 국토부는 부양가족이 1년 이상 주민등록등본에 올라 있는지만 본다. 실제 거주 여부는 검증 영역이 아니다. 아파트 당첨 직후 이혜훈의 장남이 분가한 건 상식 밖이지만 국토부는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고 했다. 모집공고상 기준은 '1년 이상 주민등록에 있었는지'뿐이다. 지금은 펄펄 뛰어도 정작 수사가 진행되고 법적 다툼이 이어지면 결과는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모두가 공분하는 위장이혼, 위장결혼이 적발되는 건 많은 경우 제보 덕분이라고 했다. 그냥 넘어간 부정당첨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어이없고 허탈한데 끝이 아니다. 제2의 이혜훈이 나오지 않게 사후 조사를 강화하는 건 가능할까. 그것도 어렵다. 연간 아파트 당첨자가 30만명에 이르고 낙첨자까지 하면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청약에 관련돼 있다. 이 많은 사람을 잠재적 부정행위자로 의심해 조사하고 수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국토부의 생각이다. '선의의 피해자가 우려되고 엄청 불편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벌써 결말이 보이는 듯하다.
보좌진에 대한 갑질 의혹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싱크홀이다. 갑질 정치인들을 빗대 '3대 천황' '4대 천황' 하는 말이 돈 지 오래다. 정치판의 많은 사람들이 알았고 언론도 들었지만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았다. 개인적 일탈로 넘겼다.
부정청약이나 갑질의 싱크홀은 지하에서 크기를 키워왔다. 위험을 들추는 건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적을 눈앞에 둔 타조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문제가 안 보이니 위험도 없어졌다고 믿어온 건 아닌가.
부정청약이나 인간에 대한 갑질은 해묵은 한국 사회의 문제다. 저절로 해소됐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혜훈 사태는 우리에게 그걸 알려줬다. 싱크홀을 메우기 위해 튼튼한 자갈, 모래, 콘크리트를 준비하라는 경고등을 켜줬다. 그런 이혜훈이 나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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