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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광장_임성호의 정치원론] '초당적 장관 지명' 미학과 술수 사이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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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극한대결 속 통합제안 의구심 자초
온건한 중도성향 인물 발굴 실패해
파국 맞은 기회 ‘불씨’ 살릴지 주목


야당 정치인을 장관으로 기용할 때 극과 극의 반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잘하면 초당적 협치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치권의 멋진 대승적 모습을 연출해 국민 신뢰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야권을 분열시키는 술수로 비추어져 정파적 갈등을 극한으로 몰고 국민의 환멸감을 높일 수 있다. 정치 미학으로 승화될 수도, 책략적 술수로 분란만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초당적 장관 지명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미국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례들이 많다. 민주당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상원의원 출신의 헤이글(C. Hagel)을 국방장관으로,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의 라후드(R. LaHood)를 교통장관으로 임명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하원의원이었던 미네타(N. Mineta)를 교통장관으로,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으로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두루 지낸 코언(W. Cohen)을 국방장관으로 중용했다. 이처럼 근래의 미국 역사만 봐도 초당적 장관 기용은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온건 중도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양극적 정쟁을 완화해 협조 분위기를 내는 조치라는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소속 정치인이 내각으로 간 반대당에서도 반발은 별로 없었다.

한국에선 야당 정치인의 장관 기용이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DJP 연합’의 일환으로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한 자민련 정치인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에 들어간 건 야당의 입각이라고 볼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른 당 소속인 추미애, 김효석 의원에게 장관직을 제의하려다 그만둔 것과 이명박 대통령이 심대평 국무총리안을 놓고 고심했던 것도 우호 진영 내의 일이고 그나마 불발되었다. 이번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 건은 적대적 야당의 중량급 정치인을 장관으로 지명한 유례없는 일이었는데, 파장 속에 결국 지명 철회되기 전부터 상황은 대참사로 흘러갔다. 이 후보자가 속했던 국민의힘은 크게 격앙돼 양극적 갈등이 더 심해졌고 최악의 모습을 보인 정치권에 국민은 극도의 분노와 허탈감을 느꼈다.

미국에서 칭찬받았던 초당적 장관 지명이 한국에선 정국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유는 무얼까? 첫째, 정파 대결이 과도한 집단주의적 경직성을 띠는 곳, 특히 정파성이 양극화된 곳에선 야당 정치인의 장관 기용이 협치와 통합의 아름다운 제스처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오히려 야당을 조롱하거나 분열·와해시키는 술수로 인식된다. 정당들의 집단주의적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은 이 점에서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다. 미국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며 최근엔 초당적 장관 임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둘째, 초당적 장관 지명은 전반적으로 화해·통합·협력의 덕목을 내세우는 가운데 해야지, 대결 태세를 유지하는 호전적 분위기 속에서 불쑥 단발성으로 던져선 역효과만 난다.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쪽에 유화적·포용적 자세를 취하며 국민 전체의 통합을 기하는 대승적 국정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야당 정치인을 기용해도 순수한 선의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상대방 허를 찌르려는 권모술수라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셋째, 초당적 장관직은 평소 과한 정파성·이념성을 띠지 않고 중용적·중도적 온건 성향을 지닌 인물에게 어울린다. 이혜훈 후보가 그런 인물이었나? 그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지녔다. 평생 견지했던 경제관도 현 정부와 대척점에 있다. 덧붙여 갑질 의혹, 가족의 재산 및 학력·경력 의혹 등 수많은 개인적 문제가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 초당적 장관 지명을 정치 미학으로 승화시킬 기회를 놓쳤다. 적절한 분위기도 조성하지 못했고 적합한 인물도 찾지 못했다. 분란 속에 파국으로 끝난 이런 기회를 언제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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