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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m 초고층 빌딩에서 만난 도시의 구도자[유상건의 라커룸 안과 밖]

동아일보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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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 101’을 오르는 미국의 암벽 등반가 앨릭스 호널드. 넷플릭스 제공

대만 ‘타이베이 101’을 오르는 미국의 암벽 등반가 앨릭스 호널드. 넷플릭스 제공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그것은 일요일 오전의 충격이었다. 느긋이 주말을 보내려던 마음을 단번에 내려친 죽비 같았다. 25일 전 세계에 생중계된 ‘Skyscraper Live’는 미국의 암벽 등반가 앨릭스 호널드(41)가 대만 타이베이의 초고층 빌딩 ‘타이베이 101’을 맨몸으로 오르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생명을 지켜줄 로프나 장비 없이 단독으로 등정하는 ‘프리 솔로(free solo)’는 일반 암벽 등반과 차원이 다르다. 30년간 암벽을 탄 그에게도 실수가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모험이다.

처음 관련 뉴스를 접했을 때는 불편했다. 미디어 자본주의와 시청자 윤리라는 두 가지 점에서 그랬다. 우선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가 기획한 ‘스포츠를 가장한 쇼’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볼거리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혹시나 모를 불행을 상품화한 것이기에 공중파들은 감행할 수 없는 ‘불공정 게임’으로 보였다. 유튜버가 리포터로 등장하고, 이미 쇼로 공인된 미국 프로레슬링 스타가 패널로 나와 산만했다. 호널드의 붉은색 반팔 티셔츠 브랜드가 만들어낼 마케팅 효과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더 불편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죽음의 경계를 목도하는 나는 과연 순수한 관객인가, 공범인가. 인간이 죽음에 도전할 때 미디어는 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애도용 클리셰와 책임을 회피할 장치를 초고화질 화면의 중계자들은 준비했을 것이다. 특히 이 ‘디지털 콜로세움’에 가담한 나는 통제된 공포 속에서 타인의 불행과 대비될 나의 안전을 확인하며 쾌락을 좇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90분 넘게 지켜보며 조금씩 시선이 달라졌다. 위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신체를 보며 경외심이 생겼다. 호널드에게는 허리 뒤춤에 달린 탄산 마그네슘통이 유일한 동반자였다. “온전히 나와 나의 움직임만을 느끼는 공간이 좋다”는 그의 말이 울림을 줬다. 빌딩에 오르는 이유가 단순히 상업적 목적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몸보다 머리가 먼저 도착하면 안 된다”, “아드레날린만 갖고 올라갈 수는 없다. 침착하게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들은 그를 쇼의 주인공이 아닌 수행자로 보이게 했다.

군살 없는 신체는 단단했고 얼굴은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닥치면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몸을 진정시키는 생각을 한다”라고 했다. “암벽은 보기보다 수직이 아니지만 건물은 완전한 수직이다. 그래서 더 오르고 싶다”는 말은 도시 한복판에서 더욱 금욕적으로 들렸다.

호널드는 초고층 빌딩 등정을 “단순한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걸 보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능한 한 가장 좋고 의미 있는 방법으로 그 시간을 써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의 행위는 쇼처럼 중계됐다. 그 쇼를 둘러싼 모든 염려는 소비와 속도를 과시하는 도시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508m 초고층 빌딩에서 만난 그는 도시의 구도자였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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