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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사냥꾼 스콧 베센트…13년 만에 다카이치 ‘방패’로 변신? [홍길용의 화식열전]

헤럴드경제 홍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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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일본을 공격했던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스콧 베센트, 2026년에는 자국을 위해 일본을 지켜야 하는 미국 재무장관이 됐다.

2013년 일본을 공격했던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스콧 베센트, 2026년에는 자국을 위해 일본을 지켜야 하는 미국 재무장관이 됐다.



2012년 12월 16일.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열흘 뒤인 12월 26일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했다.

198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은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겪으며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20년 가까이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끝내겠다며 ‘아베노믹스(Abenomics)’를 선언했다.

세 개의 화살이었다.

대규모 통화완화, 기동적 재정정책, 구조개혁을 통한 물가상승률 2% 달성이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격으로 명성을 떨친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 2012년 당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였다.

그는 아베노믹스를 겨냥한 이른바 ‘아베 트레이드(Abe Trade)’를 준비했다. 베센트가 소로스에게 보고한 작전은 단순했다.


“엔화는 공매도(short)하고, 니케이225는 순매수(long)한다.”

원리는 명확했다. 일본은행(BOJ)이 돈을 풀고, 일본 정부가 재정 적자를 확대하면 엔화 가치는 떨어진다. 엔화 약세는 수출 기업의 실적 기대를 높이고, 통화 가치 하락은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인 주가에 반영된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엔화 환율과 일본 국채 금리는 21세기 들어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엔화 환율과 일본 국채 금리는 21세기 들어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2012년 11월 달러당 80엔 수준이던 엔화 가치는 2013년 2월 93엔까지 급락했다. 같은 기간 니케이225 지수는 약 28% 상승했다. 주요 언론들은 이 거래로 소로스펀드가 약 10억~12억 달러를 벌어들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2025년 10월 4일, 아베노믹스의 열렬한 지지자인 사나에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됐다. 달러당 140엔이던 환율은 단숨에 150엔대로 올라섰고, 조기 총선 가능성이 거론된 1월 중순에는 159엔까지 치솟았다.

이미 일본은행은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선제적 금리 인상에 나선 상태였다. 여기에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상승세이던 장기 국고채(JGB) 금리는 급등했다. 다카이치가 총선 공약으로 감세 카드까지 꺼내자 장기 국채는 투매 양상을 보였다.


1월 23일, 다카이치는 강력한 시장 개입 의지를 밝혔다.

같은 시기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과 경제인들의 시선은 그린란드에 쏠려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위협이 유럽의 미국 국채 매도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급등세를 보였다.

헤지펀드 매니저에서 미국 재무장관으로 변신한 스콧 베센트는 이때 유럽이 아니라 일본을 더 주목했다. 그는 유럽발 미 국채 매도 가능성은 일축하면서, 오히려 일본 금융시장이 미국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월 23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레이트 체크(rate check)’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레이트 체크는 당국이 주요 시중은행(딜러)들에게 “현재 환율이 얼마인가”를 직접 묻는 행위다.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일본 정부는 이미 대형 은행들에게 국채 매입을 압박하고 있었다.

미국이 나선다는 소문만으로도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1월 26일, 엔화 가치는 단숨에 달러당 154엔까지 반등했다.

레이트 체크는 재무부가 아니면 낼 수 없는 신호다.

일본 국채 금리는 장단기를 통틀어서 동반 상승세다

일본 국채 금리는 장단기를 통틀어서 동반 상승세다



2012년 일본을 공격해 돈을 벌었던 베센트가, 13년 뒤에는 일본 금융시장의 수호자 역할을 한 셈이다.

13년 전 일본에 창을 들었던 베센트가 이번에는 방패를 든 이유는 뭘까? 엔화가 아니라, 미국 시장을 먼저 지키기 위해서다

일본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엔화 가치를 방어하려면 달러가 필요하고, 달러를 구하려면 미국 국채를 팔아야 한다. 이는 곧 미국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일본 금리 급등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글로벌 자산에 투자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자금의 청산 가능성이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은 미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돼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르고 뉴욕 증시가 흔들리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부담은 커진다. 베센트의 이번 선택은 외환 정책이 아니라, 정치 일정까지 계산된 ‘트럼프 구하기’에 가깝다.

이 흐름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베센트는 지난 14일 미국 재무장관으로는 이례적으로 “최근 원화 약세는 한국의 강력한 기초 경제 여건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SNS에 밝혔다. 같은 날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의 한국 성과는 한국을 아시아 내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만든다”고도 덧붙였다.

미국 정부가 한국 외환시장의 안정을 바란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미·일과 달리 한·미 간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없지만, 미국 재무부는 역외선물환시장(NDF)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발언은 원화를 겨냥한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베센트는 치밀한 전략가다. 그가 몸담았던 매크로(macro) 헤지펀드의 세계에서는 국적보다 냉철함이 우선한다. 관세가 무기화된 트럼프식 경제 전쟁에서 그는 사실상의 사령관에 가깝다.

권력 서열은 JD 밴스 부통령이나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이 앞서지만, 경제 분야에서의 실질적 영향력은 베센트가 가장 크다. ‘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TACO)’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항상 실익을 챙긴다는 뜻이다. 중국과의 관세 전쟁 수위를 조절한 것도,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파면을 막은 것도 베센트였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무력 행사를 포기한 배경에도 그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베센트의 행보는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엔화 안정을 통해 달러/원 환율이 진정됐고, 급등하던 금리에도 제동이 걸렸다. 물가와 가계부채에 직결되는 변화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제한하며 미국 증시 부담을 줄인 점은 서학개미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는 경고이기도 하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미국 재무장관이 직접 나설 만큼 일본 금융시장의 긴장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엔화와 일본 국채 가격은 여전히 21세기 들어 최저 수준이다. 26일 반등은 진정이 아니라 개입의 흔적에 가깝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노리고 일본으로 유입됐던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문제는 일본이 아니다. 일본 너머에 있는 시장이 어디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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