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
최영석 |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자동차위 부위원장·한라대 객원교수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대하는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2015년 이전까지 경직된 태도로 일관하던 수입차 브랜드들은 2015년 드러난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디젤 게이트) 이후 한국 정부와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베엠베(BMW)는 2018년 연이어 발생한 화재 사건 당시 본사 임원들이 직접 방한해 사태를 수습했고, 벤츠 또한 최근 전기차 화재 이슈에서 유럽식 합리주의만을 고집하기보다 한국적 정서를 고려한 지원책을 내놓으며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여전히 미국 벤처 특유의 방식을 고수하며 한국 시장의 특수성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쿠팡의 양면성이다. 쿠팡은 ‘미국 상장 기업’이라는 벤처의 외형을 가졌으나, 그 내면에는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를 누구보다 정교하게 파악하고 있다. 미국식 로비 문화를 한국의 대관 업무에 접목하여 전직 관료와 법률 전문가를 통해 규제와 이슈를 관리하는 모습은 매우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그러나 가장 강력해 보이는 이 전략 뒤에는 ‘미국 법’이라는 치명적 맹점이 존재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내 로비나 부정행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법에 의한 처벌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관할하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여부다. 한국 기업인 케이티(KT)가 2022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630만달러(약 75억원)라는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쿠팡에게 있어 실질적인 공포는 한국 내 비판보다, 한국에서의 무리한 대관 로비 활동이 미국 부패방지법에 저촉되어 발생하는 미국 내 집단 소송과 그로 인한 주가 폭락, 더 나아가 상장 유지에 대한 위협일 것이다. 만약 불투명한 로비 정황이 미국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해외 본사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비단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진출할 중국 자동차 회사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 안전 규정은 2003년부터 도입된 ‘자가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차량 출시 전 정부가 안전을 직접 검증하는(형식승인)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제조사가 스스로 인증한 자료를 믿고 우선 판매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전세계에서 미국, 캐나다, 한국 등 극소수 국가만 적용하고 있는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를 악용할 경우다. 제조사의 양심에 맡긴 결과, 결함이 발생하여 당국이 조사를 시작하고 리콜이 시행되기까지 최소 2~3년의 공백 기간이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의 안전 위협과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 된다. 중국산 자동차가 물밀 듯이 들어오는 시점에서 제조사의 선의에만 기대기에는 국민 안전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따라서 우리는 외국 기업을 감정적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기업과의 형평성을 맞추고 제도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쿠팡과 같은 미국계 기업에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렛대로 한 감시가, 중국 자동차에는 ‘자가인증 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강력한 사후 감시 및 처벌 체계가 필요하다. 나아가 실질적인 소비자 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집단 소송제와 같은 법률적 개정이 시급하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