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와 이해찬 상임고문이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 입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굴곡 많은 정치사의 거목이었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1988년 재야 출신 1세대 정치인으로 7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2차례 당대표 자리에 이르기까지 이해찬이라는 이름이 한국 정치에 던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전 총리는 민주진보 진영의 유능한 설계자로 꼽힌다. 역대 민주정부 대통령 4명이 그를 중용했고, 선거마다 ‘불패’의 신화를 쓴 전략가로 회자된다. 책임총리제, 지역균형발전도 그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민주당 주류 정치가 주목하지 않았던 노무현·이재명 대통령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도 그였다.
‘원칙과 가치’는 그의 38년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화두다. 국회의원 시절 불법유턴한 자신의 차에 딱지를 끊지 않은 의경을 경찰에 넘기고, 초선 의원 때 김대중 총재 면전에서 사당화를 비판했던 ‘사건’은 그의 꼿꼿한 성정을 보여준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되 “방법은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던 그였다. 인지도가 약한 지방선거 기초의원 후보들을 위해 시장·구청장 후보가 포함된 합동 명함앨범을 만들고,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가 보편화한 무렵부터 온라인 플랫폼 정당을 구상한 건 그의 실사구시 면모를 드러내는 일화다. 민주진보 정치의 맏형이라는 책임감이 재야 출신으론 드물게도 ‘실용적 원칙주의’를 고수한 이유였다고 한다.
국회의원 회관 밖에서 명함을 건넨 기자에게 “내 사무실로 와서 인사하라”고 꾸짖고, 국무총리 시절 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고 호통치는 등 구설도 잦았다.
‘대장 부엉이’는 그가 가장 좋아한 별명이자 유일한 팬클럽 이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자 지지자 2만명이 그를 대장으로 세운 것이다.
뿌린 씨앗이 꽃을 피운 것도, 피기도 전 꺾인 것도 있겠지만 지금 민주당 정치의 토대를 이해찬이 구축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진복지국가, 한반도 평화가 생애 마지막 과제”(조상호 보좌관 전언)라 한 그의 꿈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됐다. 대장 부엉이의 명복을 빈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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