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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러 ‘북방외교’ 핵심 역할, 공로명 前장관 94세로 별세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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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의 큰 별이 떨어졌다”
25일 별세한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조선일보 DB

25일 별세한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조선일보 DB


지난 2021년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의 구순(九旬) 기념 문집 발간은 외교관으로서 그의 업적과 인품이 국제적으로 재조명된 계기가 됐다. ‘공로명과 나’로 명명된 이 문집엔 국내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유명환·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외교관과 학자, 언론인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일본에서는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등이 그를 흠모하는 글을 남겼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외교부에서 38년간 근무하면서 21명의 장관을 겪었는데, 애국심, 전문 지식, 상황 판단력, 인품, 영어 실력에서 공 장관에 필적할 만한 장관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심윤조 전 국회의원은 “(주일 대사관 근무 시절) 일본인들도 공 대사의 인품과 실력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보면서 외교관의 표상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일본 측의 평가도 각별했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 대사는 “냉정함이랄까, 어딘가 타오르는 애국의 불꽃을 숨긴 듯한 그 엄숙함은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벳쇼 고로 전 주한 일본 대사는 “공 장관이 몸으로 실천해온 프로 정신은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외교관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런 평가를 받았던 공 전 장관(94)이 구순 기념 문집 발간 5년 만인 25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7일 공 장관 병실을 찾아 ‘반기문이 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며 “대한민국 외교의 큰 별이 떨어졌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외교관의 길에 들어선 공 전 장관은 미국·중국·일본·소련·북한과의 외교 현장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외교관으로서 그의 업적은 2024년 7월 국립외교원에 그의 이름을 딴 ‘공로명 세미나실’이 만들어질 때 박철희 당시 원장의 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1958년 외무부 입부 후 한일 회담에 참여하고,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해결로 한중 수교 밑거름을 마련했으며 초대 소련 대사,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 외무부 장관 (1994~1996)을 역임하며 남북 문제, 중소 관계는 물론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한국 외교의 모든 영역을 섭렵했다.”

여러 외교관들의 증언처럼 그는 1983년 한국으로 납치된 중국 민항기 사건 당시 수석대표로 나서서 국제법 원칙에 입각해 사태를 해결함으로써 중국에는 물론 우리 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반기문 전 총장은 “공 장관이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북측이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펴면 강하게 질타하며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공 전 장관은 1994년 북한의 핵 개발 중단 대가로 경수로를 제공하는 미·북 제네바 합의가 결국 북한에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제네바 합의에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치적 모함을 받자 장관직을 전격 사퇴한 후, 국군서울지구 병원에 입원한 일화도 회자된다.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 대사가 직접 문병에 나서며 사표를 수리한 김 대통령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YS는 나중에 자신의 판단 착오였음을 인정했다.

2024년 7월 ‘공로명 세미나실’ 명명식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그는 “외교 협상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며 “외교관들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성실한 앙천불괴(仰天不愧)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상 그가 공식 행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됐다. 그의 비서관으로 활동한 박용민 주태국 대사는 ‘공로명과 나’에 “(외교관은) 사사로운 자존감의 덫이나 영욕에 빠지지 않고 직을 걸고 일해야 마땅함을 공 장관으로부터 배웠다”며 “정말 중요한 주장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나의 영웅”이라고 했다. 빈소는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며 오는 27일부터 조문할 수 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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