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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로 지방소멸 해결? 축소사회 맞는 도시 재설계하자 [김태경의 시선]

파이낸셜뉴스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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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서 정체의 시기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복지국가체제
인구 꾸준히 증가한다는 전제로 구축
1989년 獨 베를린장벽 붕괴로 대전환
사람 줄고 산업기반 무너진 라이프치히
도시 재구조화 통해 새로운 기능 찾아
이제 인구 감소는 대세
韓 경제활동인구 늘어도 고령자가 견인
중기와 지방은 여전히 일할 사람 없어
모든 지역 똑같이 개발한다고 해결 안돼
행정·복지·상업 압축한 거점도시 만들고
주변 도시와 연결하는 방법 고려해봐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라이프치히 시는 통일 독일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기존 산업 기반이 급격히 붕괴하며 대규모 실업과 인구 유출을 겪었다. 도시의 인구는 1990년 통일 이후 약 10만 명이 감소했으며, 인구밀도 또한 급감했다. 도시 전역에 약 6만 채에 달하는 빈집도 발생했다. 라이프치히 시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인구 회복 대신 도시 구조를 감소된 인구에 맞추는 인식의 대전환을 단행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동부 도시 재구조화'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구체화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역사적 가치가 높고 주거 선호도가 높은 핵심 도심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선해 도시의 매력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인구 밀도가 낮고 노후화가 심각한 외곽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철거하고 다른 용도의 토지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인구 감소 현상은 더 이상 극복해야 할 예외적 위기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성장보다는 '감소' 또는 '정체'를 전제로 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심각한 인구감소 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은 저출생과 고령화로 더이상 '성장사회'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인구 증가를 전제로 한 팽창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팽창'에서 '축소'로 사회 담론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축소사회'의 시대에서는 지역 공동화, 세대갈등 심화, 소비 및 투자 위축 등 다양한 양상의 문제들이 발생한다.그동안 양적성장에 치우친 사회적 패러다임을 재고하고 정체 또는 인구감소에 걸맞는 정책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즉 양적 팽창 대신 질적 축소를 지향하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사회구조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축소사회'를 전제로 한 국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 인구구조변화...노동공급 절벽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단순 인구통계적 변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국가의 운영을 뒷받침해 온 핵심 사회 인프라의 지속가능성의 구조적 균열이다. 인구는 국가 구성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인구는 노동과 시장, 안보와 복지제도의 근간이다. 그렇지만 인구구조의 붕괴는 노동시장에 가장 위협적이다. 단순 노동력 감소를 넘어, 노동시장 내 양적 질적 위협을 가하는 요인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생산연령인구는 이미 2018년 약 3680만 명을 기록하며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 2024년 기준 생산연령인구는 약 3633만명으로 2015년 3671만 명 대비 10여 년간 약 40만 명이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총인구수의 감소와 인구구조 내 연령 분포의 불균형에 따라 더 심화될 것으로 추정된다. 15-64세 인구를 의미하는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총노동 투입량을 제약하는 가장 근본적 요인이다.

감소세에 접어든 생산연령인구와는 달리, 경제활동인구는 같은 기간 지속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24년 기준대한민국의 경제활동인구 수는 약 2940만 명으로 2000년 2215만 명 대비 725만 명 증가한 수치이며 2012년 2578만 명 대비로도 362만 명이 증가했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의 증가추세는 60세 이상의 고령 경제활동인구가 견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연령 분포를 살펴보면, 2000-2024년간 20-39세 경제활동인구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으나 60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급증 추세에 있다. 2024년 60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약 669만 명으로 2000년 199만 명 대비 470만 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경제활동인구가 약 102만 명, 30대 경제활동인구가 약 78만 명 감소한 것을 고려한다면 경제활동인구의 고령화는 멈출수 없는 현상이다. '노동공급 절벽'이 발생한 것이다.


노동공급 절벽과 더불어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노동시장 내 질적 미스매치 문제다. 지방 사업장, 중소기업 등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반면, 청년 구직자들은 수도권의 대기업 및 공공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며 해당 일자리를 위해 극심한 취업 경쟁을 치르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은 구직을 단념하며 '니트족'이 되거나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경력 개발의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회 내 계층 간 이동성을 약화시키고 청년 세대의 좌절을 심화시킨다. 장기적으로는 인적 자본의 질적 저하와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청년 인구의 급감은 기술 발전과 혁신을 해 낼 수 있는 인재 풀(Pool)의 부족을 의미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청년층에 해당하는 19-34세 인구는 2020년 약 1096만 명에서 2072년에는 약 451만 명까지 58.9%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기술 발전과 혁신이 필요한 분야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지식 및 아이디어 창출의 기회가 줄어들어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성장주의 거대 이데올로기에서 탈피


축소사회 담론은 근대 이후 사회를 지배해 온 '성장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비판에서 출발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논의되고 이행되기 시작한 복지국가 체제는 현대 사회의 인구 증가와 양적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하에 구축됐다. 앤서니 기든스가 '현대성'의 핵심 특징 중 하나로 꼽은 '미래에 대한 통제와 기획'이라는 믿음은 양적 성장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사회적 축소 개념이 학문적 정책적 담론으로 진지하게 다뤄진 것은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비롯한다. 구 동독 지역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서독으로의 대규모 인구 유출이 겹치면서, 불과 10여 년 만에 인구의 15% 이상이 감소하는 급격한 사회 해체를 경험했다. 라이프치히, 할레와 같은 구 동독 지역의 산업도시들은 빈집과 폐공장이 흉물처럼 방치되는 전례 없는 '도시 축소' 현상을 겪었다. 이런 현상이 더 이상 일시적인 쇠퇴가 아니라, 탈산업화와 출산율 저하라는 인구학적 변화가 결합된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추세라는 것이 지배적 견해로 굳혀졌다.

이와 맞물려 도시 발전은 더 이상 성장을 수반하지 않으며, 인구 감소는 도시계획의 상수로 인식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졌다. 양적 팽창이 아닌 지속가능성을 위한 관리를 목표로 '새로운 도시 특성'을 고려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으며, 급속한 축소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한 일본에서도 '인구감소사회'라는 명칭 아래 관련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축소사회 능동적 주도해야

축소 담론은 도시 단위를 넘어 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담론으로 확장됐다. 이는 21세기에 접어들며 인구 감소와 양적 팽창의 중단이 일부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국가 단위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와 인구 감소를 겪은 일본은 이 담론의 새로운 중심지가 됐다. 일본의 학자들은 일본 사회가 정부 산업계 주도 하에 경제적 풍요만을 쫓던 중앙집권 기반의 '확대 성장의 시대'에서 벗어나 공동체, 환경,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중앙적 '축소 성숙의 시대'로의 디자인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감소는 피할수 없는 현실이 됐으며 이제는 전체적 양적 팽창이 아니라 개개인에 대한 분배와 관심이 중요한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일부 선진국들도 도시 단위에서 '축소도시' 현상을 경험하며, 인구유출에 대응한 새로운 도시계획과 복지시스템 구축 등을 전개하고 있다

축소사회는 전체적인 경제규모의 감소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심화되는 불평등과 불균형이라는 이중적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축소되는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축소사회 담론은 정책의 방향을 인구위기의 '완화'에서 '적응'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하게 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인구 정책은 완화, 즉 출산율 제고를 통해 인구 감소라는 원인 자체를 막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인구 감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이다. 인구 감소를 상수로 받아들이고, 축소된 사회 규모와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사회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인구위기 대응'이라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에서, '축소사회 설계'라는 능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정책 방향성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구가 줄어든 지역에 무리하게 산업단지를 유치해 인구 수를 유지하려는 정책 보다는 그 지역 주민들이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의료 및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공동체적 유대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좋게'가 새로운 시대의 성공 기준이 돼야 한다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을 촉구한다는 점에 축소사회 담론의 가치가 있다.

축소사회 담론은 모든 지역을 똑같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폐기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각 지역의 중심이 되는 거점 도시를 선정해 주거 상업 복지 행정 기능을 압축하고, 주변의 인구 감소 지역을 모두 거점 도시에 연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거점 도시 이외의 비워지는 지역에 대해서는 농업 생태 에너지 관광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재편한다. 이를 통해 지방마다 거점 도시를 둠으로써, 비수도권 지역의 소멸 위기를 막을 수 있다. 또한 모든 국토 공간을 개발한다는 고속 성장 시대의 집착을 버리고, 국토 공간을 보다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재편하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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