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성당마다 지역사회의 인구구성의 차이가 있어 편차가 있지만, 적게는 대여섯 세대부터 많게는 30세대가 넘는 가정을 매월 방문한다.
대부분 고령의 독거노인들이시다.
미리 시간을 정해서 정기적으로 찾아뵙지만, 방문할 가정이 많다 보니, 한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0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달에 한번 신부가 찾아오는 것을 진심으로 반겨주시며 혼자사는 집에 손님이 찾아왔으니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하시지만, 하루에 방문할 가정이 많다보니 넉넉한 시간을 갖기가 힘이 든다.
그러다보니 헤어질 때는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성탄절을 앞두고 성당의 초중고 아이들과 함께 환자영성체를 다녀보기로 했다.
방문하는 가정의 상황을 고려하여, 아이들과 함께 이틀에 걸쳐 7가정의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혼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시던 어르신들 집에 1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 환자영성체 예식 이후에 노래와 율동도 보여드리고, 아이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밝고 활기찬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어르신들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로 가득했고, 아이들 또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사랑의 나눔이 주는 행복만은 분명히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2024년 제정된 통합돌봄지원법이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노인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지역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에서 지역사회와의 통합·연계를 통해 지원을 받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미 단계적으로 시범사업이 진행됐고, 올 3월 27일부터 전면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복지정책이야 늘 변화하고, 복지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 새로운 사업이 시행된다.
하지만 막상 그 내용을 열어보면 기존의 사업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는 경우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사업의 유사성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시행되는 복지관련 사업들이 어느 순간부터 행정주의에 기반한 형식적인 측면으로 흘러가는 현상이다.
사회복지 현장에 대한 비판 중에, 서비스 대상자 선정부터 사업평가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기준'과 여러 지침으로 인해 진정 필요로 하는 인격적인 만남의 부재(不在)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현상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신부(神父)가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신자들 찾아가 성체를 모시는 예식도 처음에는 시간에 쫓기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교회가 성장하고, 신부의 방문을 찾는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예식을 치르는 쪽에 더욱더 기울어지게 됐을 것이다.
물론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영성체(領聖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만남이 더욱더 풍요로워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함께 정(情)을 느끼기 위해 보다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새로운 국가정책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업을 위한 사업'이 아닌, 대상자를 위한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정량화시킬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관심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미 말하고 있는 전인적 돌봄(Holistic Care)을 위해 대상자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측면을 넘어 영적(靈的)인 측면까지도 돌봄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러한 '전인적(全人的) 돌봄'을 위한 통합돌봄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돌봄이 아닐까 싶다.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계시켜주는 것보다, 어쩌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와 인격적 친교를 나누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들이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통합돌봄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김성우 청주 덕암성당 주임신부 돌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