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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찬교수의 광고로보는 통신역사] 〈50〉시외전화 사전선택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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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DI의 사전선택제 시행 광고(1997.11.01.) & 데이콤 ACR 항의(1997.07.01)

KISDI의 사전선택제 시행 광고(1997.11.01.) & 데이콤 ACR 항의(1997.07.01)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옛 데이콤은 신문에 '한국통신 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1997)이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정부의 경쟁정책은 '무한경쟁의 냉엄한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경쟁력을 함께 키우라는 배려'라는 언급과 더불어 KT의 경쟁 동참에는 찬사를, 자사는 페어플레이를 다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면에는 회선자동선택장치(ACI)를 둘러싼 KT와의 갈등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부의 구조개편정책에 따라 데이콤이 진입한 국제전화시장에서는 사업자가 각기 식별번호(002, 001)를 가지고 대등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연이어 개방된 시외전화시장에서는 데이콤 서비스 이용 시 082를 추가로 돌려야 했다. 당시 아날로그식 집 전화기는 전화번호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동그란 원판 다이얼을 걸쇠까지 돌려야 했다. 이를 대체한 버튼식(전자식)도 물리적 힘은 덜 들지언정 여전히 성가셨다. 인지도도 낮은 후발사인데 귀찮음까지 더해졌으니 저렴한 요금에도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어려운 말하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KT는 신성일·하청일과 같은 연애인 광고로 001을 부각하며 시외전화에서는 지역 번호만 누르면 된다며 데이콤 서비스의 번거로움을 꼬집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사의 서비스로 자동 연결해주는 ACR를 무료로 보급하자 양사 간에는 갈등이 커졌다. KT는 데이콤이 설치한 ACR 작동을 중단·철거하기도 했다. 데이콤의 보급 현장서 ACR를 가져가려던 KT 직원이 형사 고발되기도 했고 분쟁은 통신위원회 제소로 이어졌다. 녹취 내용을 옮겨 적은 수백 쪽 분량의 자료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공정실 연구진에게 배부됐고 검토를 마친 의견은 다시 통신위로 보내졌다. 필자가 ACR 실물을 처음 접한 것도 이때였다.

어느 날 원에 출근하니 부산했다. 2000만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하는 대규모 사업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지하 대강당은 작업반 설치에 정신이 없었다. 시외전화 사전선택제. 미리 이용자가 시외전화 사업자를 지정하면 식별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사업자가 선택되는 공정경쟁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작업에 발동이 걸린 것이다.

제도는 몇몇 걸림돌을 해결하면서 진행됐다. 전국 가구를 대상으로 벌이려던 설문 조사는 비용·시간 제약으로 204만 데이콤 고객에게 사업자 선택을 묻는 것으로 축소됐다. 명확히 KT를 선택한 32만 가구를 제외한 무응답자를 포함한 107만 가구를 데이콤 고객으로 간주, 8.5%(매출액 기준 10%)의 시장점유율이 산정되었다. ACR 설치는 교환기 문제로 제도 적용이 어려운 지역에만 허용됨으로써 기술적 공백을 보완하는 동시에 양사 간 마찰을 최소화했다.

당시 홍보를 담당했던 H박사(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는 연예인 섭외를 고민했지만, 최종 광고는 흰 배경 위에 엄지손가락 위에 축구공을 얹은 이미지와 함께 '11월 1일'이라는 날짜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되었다. '신나는 축구 한일전도 있지만'이라는 문구 아래, 시외전화 사전선택제 시행 사실만을 담담히 알리는 중립적인 어조의 광고였다. 아마도 KISDI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대중 광고일지 싶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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