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 식민지이던 1933년 10월 조선일보에 ‘도쿄 유학생들이 빙상 구락부(俱樂部)를 결성했다’는 취지의 기사가 짤막하게 실렸다. 요즘으로 치면 스케이트 동아리에 해당할 것이다. 빙상 구락부의 애칭은 다름아닌 ‘펭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펭귄이라는 동물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었을지 의문이나, 도쿄에 거주하는 유학생들 사이에 펭귄은 제법 친숙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얼음이나 눈 위를 뒤뚱뒤뚱 걷는 펭귄의 귀여운 외모가 구락부 이름을 짓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뽀로로’와 ‘펭수’ 둘 다 펭귄에서 비롯한 캐릭터 아니던가.
펭귄은 바다사자, 물개, 물범 등 해양 포유류와 상어에겐 좋은 먹잇감이다. 그런데 펭귄 고기는 특유의 냄새 탓에 사람의 입맛에는 잘 안 맞는다고 한다. 다만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간이 펭귄을 대량으로 사냥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지방이 풍부한 펭귄의 몸에서 기름을 얻기 위함이었다.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도 지구의 펭귄 개체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이다. 온난화 등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서식지 파괴 때문이다. 특히 남극에만 서식하는 황제펭귄은 해빙(海氷) 감소로 번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멸종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매년 4월25일을 ‘펭귄의 날’로 정해 펭귄을 보호하고 있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탐을 내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이 한반도의 약 10배에 달한다. 북극의 일부인 그린란드를 상징하는 동물은 사향소(Musk ox)다. 주로 그린란드 북부 지역에 서식하는 아주 희귀한 동물이다. 빙하기에 멸종한 매머드와 달리 사향소는 빙하기를 견디고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린란드도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요즘 기온 상승으로 얼음이 자꾸만 녹으면서 사향소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들. 펭귄은 남극을 비롯한 지구 남반구의 해안 지역에만 살아 그린란드 등 북극에선 펭귄을 볼 수 없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펭귄은 바다사자, 물개, 물범 등 해양 포유류와 상어에겐 좋은 먹잇감이다. 그런데 펭귄 고기는 특유의 냄새 탓에 사람의 입맛에는 잘 안 맞는다고 한다. 다만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간이 펭귄을 대량으로 사냥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지방이 풍부한 펭귄의 몸에서 기름을 얻기 위함이었다.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도 지구의 펭귄 개체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이다. 온난화 등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서식지 파괴 때문이다. 특히 남극에만 서식하는 황제펭귄은 해빙(海氷) 감소로 번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멸종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매년 4월25일을 ‘펭귄의 날’로 정해 펭귄을 보호하고 있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탐을 내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이 한반도의 약 10배에 달한다. 북극의 일부인 그린란드를 상징하는 동물은 사향소(Musk ox)다. 주로 그린란드 북부 지역에 서식하는 아주 희귀한 동물이다. 빙하기에 멸종한 매머드와 달리 사향소는 빙하기를 견디고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린란드도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요즘 기온 상승으로 얼음이 자꾸만 녹으면서 사향소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백악관이 23일 SNS에 올린 AI 합성 사진. 트럼프가 성조기를 든 펭귄과 함께 북극 그린란드의 설원 위를 걷고 있다. SNS 캡처 |
백악관이 23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인공지능(AI) 합성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가 성조기를 든 펭귄과 함께 그린란드 설원 위를 걷는 모습이다. 펭귄 서식지는 남극을 비롯한 지구 남반구의 해안 지역이다. 따라서 그린란드에선 펭귄을 볼 수 없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백악관은 사진과 함께 “펭귄을 포용하라”(Embrace the penguin)라는 글을 게시했다. 그린란드 주민들이 전통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펭귄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미국인)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극이 익숙한 펭귄을 북극으로 공수한들 그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막무가내 트럼프 때문에 애꿎은 펭귄까지 고생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