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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도 다시다-치킨스톡 써 감칠맛…‘조미료 칵테일’도 등장

동아일보 김다연 기자,남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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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를 다시 보다

[위클리 리포트] ‘요리 조력자’로 부활한 조미료
《조미료의 재발견

유해성 논란에 휩싸였던 조미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맛의 완성도를 높이는 식재료로 재평가되고 있다.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맛의 깊이를 설계하는 조력자’로 자리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시청자들이 열광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한 장면. 바쁘게 움직이는 경력 수십 년 요리사, 미슐랭 스타 인증을 받은 유명 주방장의 조리대 사이로 익숙한 갈색 가루가 카메라에 잡힌다. CJ제일제당의 ‘쇠고기 다시다’, 서양식 쇠고기 육수인 ‘브라운빌 스톡’ 등을 거리낌 없이 냄비에 넣는 모습이 나온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셰프들도 쓰는 재료가 됐다니 조미료가 다시 보인다”, “이제 조미료 쓰는 건 숨길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다.

앞서 영국 스타 셰프인 고든 램지의 스승으로 알려진 마코 화이트도 상업용 스톡과 조미료를 사용한다고 말하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영국 역사상 최연소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셰프로, 램지 등 수많은 스타 셰프를 길러낸 인물이다. 이런 그가 과거부터 상업용 육수 제품을 요리에 활용해 왔다는 사실은 미식계에서도 적잖은 화제를 낳았다. 그는 “크노르(Knorr·치킨스톡 제품)는 세상 최고의 재료 중 하나이며, 모든 주방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조미료가 맛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하나의 식재료로 전 세계 식탁에 녹아들고 있다. 유명 셰프들마저 필요할 때는 조미료를 쓰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이제 조미료는 ‘인위적인 첨가물’이라는 예전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맛의 깊이를 설계하는 조력자’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글로벌 미식 트렌드에서도 감칠맛을 가리키는 ‘우마미(うま味·umami)’가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조미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

● 미원에서 다시다까지 ‘감칠맛의 산업화’


조미료는 음식의 맛을 조절하는 데 쓰이는 재료를 말한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에 이어 ‘제5의 맛’인 감칠맛을 보완해 요리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선 전통적으로는 설탕, 식초, 소금, 젓갈에 더해 된장이나 고추장 등도 조미료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식품 기업들이 감칠맛을 중심으로 한 조미료 개발에 나서면서, 조미료의 성분과 형태도 한층 다양해졌다. 1세대 발효 조미료 ‘미원’을 시작으로 2세대 종합 조미료인 ‘다시다’, 최근에는 자연재료·액상형·코인형 제품까지 등장하며 단계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대상 ‘미원’

대상 ‘미원’

국내 조미료 산업의 출발점은 1950년대다. 1956년 대상그룹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 주식회사가 ‘미원’을 출시하면서 국산 조미료 시대가 본격 시작됐다. 당시의 미원은 사탕수수 원당을 미생물 발효시켜 만든 발효 조미료로, 주성분은 우리가 흔히 아는 MSG(L-글루탐산나트륨)다. 육류, 채소, 과일 등에 들어있는 단백질 성분 중 하나인 아미노산(글루탐산)을 통해 감칠맛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미원 출시 이전까지 국내 조미료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건 일본산 MSG ‘아지노모토’였다.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아지노모토는 광복 이후 수입이 전면 금지됐지만, 밀수품이 쌀값보다 비싸게 거래될 만큼 수요가 높았다. 미원은 이런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며 대량 생산 체계를 갖췄고, 조미료는 가정 식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CJ제일제당 ‘다시다’

CJ제일제당 ‘다시다’

시장 판도가 바뀐 건 1970년대 중반이다. CJ제일제당이 쇠고기, 생선, 채소 등 천연 원료를 배합한 종합 조미료 개발에 나서면서다. 1975년 출시된 ‘다시다’는 비싼 쇠고기 국물을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인식되며 빠르게 확산됐다. 다시다 생산량은 첫 달 20t에서 두 달 만에 200t으로 10배로 늘었다. 1980년대에는 평균 시장 점유율 65%대를 차지하며 발효 조미료를 넘어섰다. 지금은 국내 조미료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소비자가 기준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MSG 논란 딛고 ‘자연재료-액상 형태’로 진화

MSG가 포함된 조미료 시장은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90년대 초 ‘MSG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미료 전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1993년 ㈜럭키(현 LG생활건강)가 ‘맛그린’을 출시하며 타사 제품을 겨냥해 “화학조미료 MSG는 이제 그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쇠고기 다시다를 비롯한 기존 조미료는 논란의 중심에 섰고, ‘MSG 조미료=건강에 나쁜 식품’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해당 광고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소비자들은 ‘MSG는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을 하게 된 뒤였다. 이후 미원을 비롯한 조미료는 장기간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매출도 크게 줄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전환점이 마련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이 20년간 여러 차례 실험을 거친 끝에 ‘MSG는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미 오래전인 199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MSG의 안전성을 확인한 사실도 재조명됐다. 이후 정부 차원의 MSG 안전성 홍보와 제도 정비가 이뤄지면서 소비자 인식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대상 ‘청정원 참치액’

대상 ‘청정원 참치액’

위기 후 조미료 업계는 건강을 내세운 신제품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자연 원료를 강조한 3세대 조미료 ‘자연재료 조미료’가 잇따라 출시됐다. 2007년 출시된 CJ제일제당의 ‘자연재료 산들애’와 대상의 ‘청정원 맛선생’이 이 흐름을 이끈 제품들이다. 액상 중심의 4세대 조미료도 나왔다. 참치, 콩, 채소 등 원재료가 가진 감칠맛을 액상 형태로 추출한 제품으로 샘표의 ‘연두’가 대표적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시즌1’ 출연자였던 이원일 셰프가 지난해 7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즐겨 쓰는 조미료라고 언급하면서 연두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다.

조미료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자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존 제품들도 재단장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2012년 다시다의 프리미엄 라인인 ‘명품골드 다시다 쇠고기’를 선보인 데 이어, 2017년에는 별도 양념 없이 한 끼 요리를 완성할 수 있는 제품 ‘다시다 요리의 신’을 출시했다. 대상도 2014년 미원을 대대적으로 재단장한 신제품 ‘발효미원’을 내놓았다. 소비자들의 입맛 변화에 맞춰 감칠맛의 균형을 조절하는 한편 패키지 디자인에도 변화를 줬다. 60년간 미원을 상징한 붉은 신선로 모양을 축소했고, 이듬해엔 연녹색을 강조한 제품도 선보였다.


● ‘집밥’ 수요 증가로 ‘코인 조미료’ 급부상


최근에는 동전 모양의 조미료, 일명 ‘코인 육수’가 5세대 조미료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요리에 맞춰 한 알만 넣으면 육수 맛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 패널 조사 기반 추정치에 따르면 국내 코인 조미료 시장 규모는 2023년 825억 원에서 2024년 1214억 원으로 1년 새 47.2% 증가했다. CJ제일제당도 “조미료를 편리하게 쓰고자 하는 소비자 욕구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코인 육수 시장은 20%가량 성장했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 ‘백설 육수에는 1분링’

CJ제일제당 ‘백설 육수에는 1분링’


대표 제품인 CJ제일제당의 ‘백설 육수에는 1분링’은 가운데가 뚫린 ‘링’ 형태로, 끓는 물에서 1분 이내에 녹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대상이 2022년 선보인 청정원 ‘맛선생 국물내기 한알’ 역시 코인 육수 시장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꼽힌다. 대상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지난해 3분기 누적(1∼9월) 매출액이 두 자릿수 이상 성장을 보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집에서 요리한다는 직장인 지용석 씨(32)는 “4년 전만 해도 가루형 쇠고기 다시다를 썼지만, 지난해부터 1년 정도 코인 육수만 쓰고 있다”며 “가루는 보관하다 보면 뭉치기 쉬운데 코인형은 1회분씩 포장돼 있어 양 조절이 쉽고 보관도 간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퇴근 후 시간을 많이 들이기 어려운데, 코인 육수를 쓰면 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장찌개 같은 국물 요리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보니 효율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인 육수 시장의 성장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식생활이 달라졌다는 점을 꼽는다. 외식이 줄고 집밥이 일상화되면서 조리에 익숙하지 않은 1인 가구와 MZ세대 소비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간편 조미료 수요가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특히 1인 가구 증가로 대부분의 식품이 편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액체나 가루 형태보다 1회 사용 기준으로 포장된 코인형 조미료가 소포장·소용량 트렌드에 부합해 수요가 전반적으로 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데이터 분석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조미료(가루, 액상, 큐브형) 시장은 2020년 2319억 원에서 지난해 2431억 원으로 증가했다. 성장을 이끄는 것은 복합 및 자연 조미료 시장이다. 복합·자연 조미료 시장은 2021년 1754억 원에서 2022년 1858억 원으로 성장한 이후 2023년 1880억 원, 2024년 1909억 원으로 증가세를 이어갔고, 지난해에는 1923억 원까지 확대됐다.

● 전 세계 ‘감칠맛’ 앓이… 칵테일에도 활용


글로벌 식품업계 전반에서 ‘우마미’ 특징을 살려 맛을 다양화하려는 시도가 많아지면서 관련 조미료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우마미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48억 달러(약 7조 원)에서 지난해 51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 시장은 2025년부터 연평균 7.3% 성장하며 2030년에는 7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조미료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간 ‘다시(出汁)’가 요리를 넘어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요리에 활용되는 전통 국물인 다시를 카페에서 커피처럼 컵에 담아 즐기거나, 다시의 풍미를 앞세운 음료와 디저트가 등장하는 등 소비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영국 온라인 매체에서는 칵테일 ‘블러디메리’에 샘표의 연두를 활용한 ‘블러디 우마미 레시피’가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글로벌 수요 확대에 맞춰 국내 조미료 업계도 해외 시장 공략을 서서히 넓히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현재 일본, 몽골, 홍콩 등 아시아권을 비롯해 북미(미국), 오세아니아(호주), 남미 등 11개국에 진출해 있다. 일본에는 2014년에 진출해 ‘한국의 맛’ 다시다를 수출하고 있다. 현재 일부 ‘돈키호테’에 입점돼 있으며, 일본 코스트코 전 매장에서 시식 행사 등을 통해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식문화가 비슷한 몽골에선 ‘쇠고기 수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수요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선보이며 다시다 활용법을 모르는 현지인과 젊은 3세 교포들을 타깃으로 반응을 살피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해외 조미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본격적인 확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며 “해외에서 1인 가구를 중심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만큼, K조미료 수요 증가도 기대해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상도 해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출 중인 미원에 더해 지난해부터 자사 글로벌 식품 브랜드 오푸드를 통해 코인 육수 제품인 ‘맛선생 국물내기 한알’을 중심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구권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직접 한식을 만들어 먹고자 하는 글로벌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황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MSG 유해성 논란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요리의 실용성을 기준으로 조미료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조미료를 단순히 조리 보조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즐기는 문화가 젊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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