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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13] 대한 끝에 양춘 있다

조선일보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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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아유, 이번 달 난방비가 48만원이 나왔어, 48만원!” 수영장 탈의실 옷장 너머에서 아주머니의 한탄이 들려온다. 나도 평소보다 10만원 이상 더 나와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저 집은 더하네. 들어 보니 복층이란다. “엄마, 그만 좀 해!” 같이 수영을 다니는 20대 딸이 듣다 못해 짜증을 낸다. “어쩌라고, 그럼 집에서 패딩 입고 있어?” ”그래, 입어라. 제발 좀." 모녀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웃는다.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말렸다. 연일 이어지는 영하의 날씨에 제대로 머리를 안 말리고 돌아다녔다가 감기로 고생 좀 했다. 이래저래 무시무시한 추위다.

“대한 끝에 양춘이 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외치며 이 시기를 버텼다. 큰 대(大)에 찰 한(寒)을 쓰는 24절기 가운데 가장 춥고 혹독한 마지막 때를 지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도록 정수리에 머무는 볕 양(陽)에 봄 춘(春)의 계절, 말만 들어도 행복한 봄, 봄, 봄이 온다. 이런 말도 생각난다. “터널이 가장 어두울 때가 밖으로 나가기 직전이라는 걸 알아둬.” 내가 가장 힘들 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바보처럼 울다가 “정말?” 하던 기억이 난다. 설령 거짓말일지라도, 그때는 그런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여러분, 긴긴 터널 끝에 빛이 온답니다, 봄이 온답니다, 복이 온답니다. 그렇게 믿고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오늘 서울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꽁꽁 얼어붙었다. 물소리가 아름다워 수성(水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한파 속 계곡은 고요하기만 하다. 흐르는 물조차 동면에 드는 한겨울, 난방비 폭탄에 간담이 서늘하지만, 그래도 자연을 흉내 내어 사색에 잠기어 볼까. 세상에 필요 없는 계절은 없다. 정신과 육체의 담금질은 언제나 우리를 한 뼘 더 깊고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리니. 오너라, 동장군! 으, 추워, 추워, 춰! 춤이나 추자!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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