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도 사장님인데 할아버지는 언제 처벌 받아요?”
금형 제조 업체 A대표는 최근 중대재해 관련 TV 뉴스를 보던 중 초등학교 1학년 손자가 대뜸 던진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 A대표는 “아이까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 중대재해와 관련해 ‘처벌’이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노출돼 있는 것”이라며 “현장에서도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방법보다 ‘걸리면 끝장’이라는 공포가 먼저 작동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명칭 자체가 현장과 국민 인식에 과도한 불안과 위축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법 취지가 사고 예방과 안전 강화에 있다면 그에 맞게 ‘중대재해예방법’으로 법 이름만이라도 바꿨으면 좋겠다”며 “사람들 인식 속 이 법은 예방이 아니라 처벌을 위한 법으로 각인된 상황이라 자발적인 안전 문화가 자리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2년 전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 등 중처법이 산업재해 예방을 목표로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 법의 취지를 ‘처벌’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 명칭과 제도 설계 자체가 재해 예방보다는 모든 사업자를 잠재적 처벌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안전 강화보다는 법적 대응에 에너지를 쏟게 만들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23일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메인비즈협회)가 지난해 12월 369개 메인비즈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처법 인식 및 대응 실태 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에 대한 질문에 ‘현장 안전 문화 및 근로자 안전의식 향상’이라고 답한 경우는 39.0%(복수 응답)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수적 경영 및 투자 위축(33.6%)’ ‘경영진 업무 부담 및 사법 리스크 증가(29%)’ ‘안전 투자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23.6%)’ 등의 답변도 높은 비중으로 나왔다. 산업 현장에서는 긍정적 효과보다 ‘처벌’로 인한 경영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실제 법안의 주요 문제점으로 ‘중소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적용’이 78.0%로 가장 높게 나왔고 다음으로 ‘경영 책임자 의무 범위 불명확(48.5%)’ ‘예방 아닌 처벌 위주(45.5%)’ ‘과도한 처벌 수준(40.9%)’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인식이 퍼지면서 사고 예방보다는 사고 이후 유가족과의 합의나 변호사 선임이 우선순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B 씨는 “안전 투자를 어떻게 강화할지보다 사고가 나면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며 “중처법 시행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변호사 선임’과 ‘유가족 합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2022년 경남 양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로 인해 해당 대표가 중처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로 감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위반 결과가 무겁고 죄질이 가볍지 않지만 회사와 합의한 유족이 선처를 탄원한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유족과의 합의나 변호사 선임을 더욱 중요시하는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중처법은 사고 예방보다 분쟁과 소송을 키우는 구조를 키우고 있다는 게 산업 현장의 목소리다.
전문가들 역시 법의 획일적 적용이 사고 예방이라는 본래 목적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산업 안전 전문가는 “처벌 중심 접근만으로는 안전 문화가 정착되기 어렵다”며 “기업 규모와 여건에 맞는 단계적 의무 설정과 예방·지원 중심의 제도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섭 기자 hit8129@sedaily.com박우인 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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