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18일 밤 9시19분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병원 폐쇄병동에서 지적 장애인 김도진(가명, 32)씨가 한 환자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른쪽은 김씨 살해를 주도한 주범이고, 왼쪽은 종범이다. 피해자 김씨가 옷을 벗은 채 탈출을 시도하다가 이들에 의해 방안으로 밀려들어 간 시각은 25분 뒤인 9시44분이었다. CCTV 갈무리 |
중증 지적 장애인이 다른 환자들에 의해 폭행·사망하는 사건이 반복된 울산 반구대병원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을 통해 지속적으로 중증 발달장애인 환자들이 유입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정신병원이 사실상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거주시설처럼 변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이들의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와 행정당국의 집중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울산의 정신의료기관인 반구대병원을 관할하는 울산 울주군 보건소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장애인거주시설로부터 63명의 중증 장애인 환자가 옮겨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8명을 제외한 55명이 지적 장애인이었다. 다른 4명은 자폐성 장애인, 나머지 4명은 조현병 또는 조현정동장애(조현병에 기분장애 관련 증상이 동반되는 증상)였다. 4명을 제외하고 모두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지닌 발달장애인이었다. 발달장애인법에서 지적 장애인이란 ‘지능 발달의 지체(지능지수 70 이하)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일컬으며, 자폐성 장애인은 ‘소통과 사회성 발달의 차이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뜻한다.
63명 중 14명은 최근 문제가 불거진 울산의 태연재활원에서 옮겨온 것으로 나타났다. 태연재활원은 지난해 7월 생활지도원 4명이 기분에 따라 중증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끝에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시설이다. 반구대병원과 함께 같은 사회복지법인 동향원 소속인 동원재활원과 동연요양원 출신은 각각 7명으로 뒤를 이었다. 동원재활원과 동연요양원은 2019년 반구대병원에 장애인을 강제 입·퇴원시켰다는 의혹에 휩싸여 검찰에 고발됐다. 장기 입원자는 보험 수가가 낮아지는 점을 이용해 연고가 없거나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같은 법인 소속 재활원과 요양원 장애인들을 돌려가며 반구대병원에 수차례 입·퇴원시키는 행태가 반복됐다는 거였다.
2022년 1월18일 밤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병원 폐쇄병동 복도에서 한 환자가 누워있는 또 다른 환자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있다.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를 구조해야 할 의료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CCTV 갈무리 |
이 밖에도 성우해피홈 3명을 비롯해 음성 꽃동네아동복지시설, 소망의 집, 인혜원, 비전하우스, 대동시온재활원, 한뜻마을 등 전국 30여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반구대병원에 중증 발달장애인을 전원시켰다. 5년간 전원된 총 63명 중 21명은 아직 반구대병원에 머물고 있다. 이 통계는 5년간의 기록이라 10년 전 또는 15년 전 전원된 환자까지 포함하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반구대병원으로 온 발달장애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기준 입원환자가 214명이었던 반구대병원에서는 절반 이상이 발달장애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발달장애인으로서 장애인거주시설과 정신병원을 모두 경험한 박경인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한겨레에 “정신병원이 장애인거주시설과 다른 점은 더 많은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시설에서는 외부와의 접촉면이라도 있지만, 정신병원으로 가면 약물 복용량도 늘어나고 분란을 일으킬 경우 주사를 맞거나 독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정신병원이 시설보다 더 싫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 가면 과잉행동장애가 줄어드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냥 약에 더 취해있다. 결국 장애인거주시설이 관리하기 힘든 발달장애인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약을 먹이는 것”이라고 답했다.
보건복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상훈 변호사(진실화해위 전 상임위원)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행동장애로 인해 관리가 힘든 지적 장애인들을 체계적으로 정신병원에 넘기고, 정신병원은 신규 환자를 확보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하는 인력공급 체계가 형성됐다”며 “반구대병원의 중증 장애인 전원 현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부 정신병원이 사실상 중증장애인의 장기 거주시설처럼 돼 버리면서 지적 장애인들은 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22년 1월18일 반구대병원 폐쇄병동에서 체격이 건장한 환자 2명에 의해 목이 졸리고 등이 밟히는 등 폭행을 당해 살해된 지적 장애인 김도진(가명, 32)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가해자들은 정신병원 입원생활을 견딜 수 없다며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로 갈 목적으로 키가 140㎝가량에 불과한 지적 장애인 김씨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정신의료기관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일상적·맞춤형 지원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니다. 통제 중심의 치료 환경 속에서 발달장애인 전원이 반복되고 있다면, 이는 개인이나 특정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전반을 점검해야 할 국가의 책임”이라며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전수조사와 행정당국의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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