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추이/그래픽=이지혜 |
지난해 고공행진하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 들어서도 높은 수준을 이어간다. 증권가에서는 정부의 구두개입과 해외투자자 압박이 단기 환율 방향 전환을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에 수렴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1원 내린 1465.8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며 안정세를 찾아가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다시 가파른 상승세로 전환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대외 변수에 특히 민감한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하반기 전세계를 대상으로 관세를 대거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무역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된 영향이다. 한미 무역협정에서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를 확정했다는 소식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가 100 이하로 떨어지며 달러화가 약세 흐름을 보였지만 원화는 더 큰 약세를 보였다. 원화는 같은 기간 유로화, 호주달러 대비로도 큰 약세를 보였다.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 태국의 통화인 바트화 역시 원화 대비 최고점을 경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당국은 원/달러 환율 상승 국면에서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확대를 환율 불안 요인으로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키움증권 '미국주식 톡톡 채널'(구독자 3만7000명)은 지난해 연말부터 운영을 중단했고 한국투자증권도 해외 주식 관련 텔레그램 채널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메리츠증권, 토스증권 등 해외주식 거래가 활발했던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관련 이벤트를 하나둘 종료했다. 정부 당국의 조치에도 원/달러 환율은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 14일(현지시각)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원화가치 하락이 정상적이지 않다며 구두개입을 내놓았지만 하루만에 1475원까지 치솟았다.
해외투자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 속 정부가 법령을 근거로 개인투자자 해외주식을 강제 매각할 수 있다는 루머가 확산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증권사가 해외주식 유의사항에 '법령 및 규정에 따른 강제 매각 가능성'을 명시한 것이 발단이 됐는데 해당 문구는 해외 현지 법령에 따른 거래 위험을 뜻하는 내용이지만 '해외'라는 표현이 빠져 투자자들이 국내 규제로 오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가는 정부의 구두개입과 서학개미 압박이 원/달러 환율 진정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나증권은 2011년 이후 12번 구두개입이 있었지만 개입 이후 2주 동안 원/달러 환율은 평균 0.6% 상승해 추세를 바꾸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NH투자증권도 환율 방어를 위한 당국의 노력은 이어질 것이지만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면 하단이 낮아지기 어려워 연평균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1420원에서 1440원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환율은 단기적으로는 통화량 증가 등으로 인해 오버슈팅 현상이 발생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그 국가의 금리수준, GDP(국내총생산) 등 기초체력에 수렴한다"며 "정부의 발언이 오히려 국내투자자로 하여금 달러 수요를 키우는 역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연말 중으로 원/달러 환율이 진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하가 가시화되고 국내 수출도 호조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ING는 올해 연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금리 인하 불확실, AI(인공지능) 버블 우려가 최근 원화 약세 요인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원화 여건이 개선돼 올해 중반 1375원 수준까지 하락했다가 연말 1400원 수준에서 마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창현 기자 hyun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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