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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유럽연합(EU)이 통신·디지털 인프라 규제의 틀을 재편하는 디지털 네트워크 액트(DNA) 입법에 착수했다.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확산에 이어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데이터 트래픽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국가별로 파편화된 규제 체계로는 통신 인프라 투자와 단일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통신 인프라 전환과 함께 망 이용을 둘러싼 갈등 관리 방식까지 제도적으로 손보겠다는 구상을 제시하면서 EU가 제시한 규제 재편 방향과 제도적 해법이 향후 우리나라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3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DNA는 기존 유럽전자통신규범(EECC)을 폐기하고, 통신 규제를 지침이 아닌 규정 형태로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규정은 별도의 국내 입법 절차 없이 EU 전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만큼 국가별 규제 차이를 최소화하고 단일시장 효과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데이터 트래픽 급증 속 통신 인프라 역할 변화…통신 규제 개편 추진
EU가 DNA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디지털 트래픽 환경 구조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온라인 동영상서비스가 트래픽 증가의 주된 요인이었다면, 최근에는 클라우드와 대규모 데이터 처리,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확산으로 네트워크 이용 환경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네트워크를 단순한 전송망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서비스 전반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디지털 서비스 확산 속도가 빨라질수록, 통신망의 역할과 성격도 바뀌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에 더해 EU는 현행 통신 규제 체계가 국가별 지침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시장이 과도하게 파편화됐다고 진단했다. 동일한 통신 서비스임에도 회원국별로 규제 기준과 인허가 조건이 달라 사업자들이 국경을 넘는 확장이나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데 구조적 제약이 발생해 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럽 통신사들이 투자 여력과 경쟁력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사업자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EU는 통신 규제를 단일 규정으로 단계적 통합하겠다는 방침이다. 전환 속도는 강제하지 않고, 투자 예측 가능성을 높여 통신사 부담을 완화하고 단일시장 차원의 전환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일단 구리망 종료 시점은 기존 2030년에서 2035년으로 연장했다. 급격한 전환에 따른 통신사 비용 부담과 이용자 혼선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고성능 네트워크 전환도 추진한다.이동통신 분야에서는 고품질 5G의 적기 구축을 유도하는 한편, 6G 등 차세대 이동통신을 염두에 둔 투자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주파수 사용 기간도 장기화해 잦은 재할당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줄일 방침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5G·6G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제환경도 정비한다.
위성통신은 국가별로 인허가가 이뤄지던 방식을 단일 인허가 체계로 바꿔 범유럽 서비스 제공이 용이하도록 할 계획이다.
망 이용대가 논의도 새 틀로…요금 부과 대신 조정 절차로
이 같은 제도 재편 과정에서 특히 주목받는 쟁점이 망 이용대가다.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확산 이후 트래픽 증가에 따른 통신망 투자 부담을 둘러싸고 통신사와 콘텐츠·플랫폼 사업자 간 갈등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와 클라우드 확산으로 데이터 처리량과 네트워크 부하가 더욱 커지면서 기존의 시장 자율 협상만으로는 망 이용 갈등을 조정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EU 내부에서 제기됐다.
다만 EU는 콘텐츠·플랫폼 사업자에게 망 이용대가를 법으로 직접 부과하는 방식은 택하지 않았다. 특정 사업자에 대한 비용 의무나 요율을 명시하기보다, 트래픽 증가로 인한 망 이용이 통신사의 투자 지속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규제기관 차원의 조정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다룰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DNA에 따르면 통신사(ISP)와 콘텐츠사업자(CP) 간 망 이용과 관련한 협상 갈등이 발생할 경우 회원국 규제기관이 자발적 조정 절차를 통해 합의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EU 통신 규제기구 협의체인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 가이드라인과 의견을 제시해 국가별로 상이한 해석이나 개별 입법으로 흐르는 것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트래픽 증가로 창출된 가치가 네트워크 투자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도 함께 제시됐다.
이는 망 이용대가 논의를 과금 여부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단일시장 차원에서 투자 지속 가능성과 경쟁 환경을 함께 고려하겠다는 EU의 판단으로 해석된다. 통신 규제를 규정 형태로 통합한 것과 마찬가지로 망 이용 갈등 역시 국가별 대응이 아닌 EU 차원의 공통된 프레임과 조정 구조 아래 다루겠다는 메시지다.
EU의 이번 입법은 망 이용대가 논의가 장기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도 대비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논의는 수년째 이어져 왔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의 트래픽 증가로 통신망 투자 부담이 커지면서 통신사와 플랫폼 간 비용 분담 구조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반복됐다. 국회에서는 공정한 망 이용대가를 명분으로 한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구체적인 제도 설계나 합의된 처리 방향은 아직 도출되지 않은 상태다.
통신사는 네트워크 투자 지속 가능성을 이유로 제도적 장치 필요성을 제기해 온 것과 달리 플랫폼 업계는 망 이용대가를 별도로 규정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 가운데 망 이용 갈등을 과금 여부가 아닌 규제기관의 자발적 조정 절차로 관리하려는 EU식 접근이 국내 망 이용대가 논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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