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통닭의 통닭에는 닭발이 있다. 바삭하고 보드랍다. 박미향 기자 |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거라.’
고인이 된 배우 안성기가 생전에 쓴 글 중 일부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그의 장례미사에서 1993년에 어린 아들에게 쓴 이 글이 공개됐다. 장남 안다빈씨는 “아버지의 서재, 어릴 때부터 신성한 곳으로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들어가기도 했던 공간에 들어가서 예전부터 버리지 않고 모아두셨던 걸 정리를 해봤다. 저에게 써주신 편지이긴 하지만 저희 모두에게 남긴 메시지 같다”며 읽었다. “다빈아, 네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던 날”로 시작하는 제법 긴 글에서 유독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이유는 ‘실패’ ‘슬픔’이란 두 단어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겪고 각자의 슬픔을 끌어안고 산다.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의 어두운 면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안성기는 ‘마음의 평화’를 언급했다. 불안이 넘치는 시대다. 누구는 달리고,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음악을 들으며 내면을 다스린다. 하지만 제아무리 애써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란 쉽지 않다.
취재를 위해 찾은 지역 재래시장에서 종종 ‘마음의 평화’를 건진다. 시장은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럽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친다. 몇 바퀴 돌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눈 후 시장을 빠져나올 때쯤엔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을 만난다. 시장 상인들이 선사한 긍정적 에너지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양동통닭’ 통닭. 박미향 기자 |
전국엔 재래시장이 많다. 거미줄처럼 엮인 전국 유통망이 지배하는 지금, 버텨주는 재래시장이 고맙기만 하다. 광주광역시에는 규모 면에서 손에 꼽히는 재래시장이 있다. 양동시장이다. 역사도 오래됐다. 1910년대 초부터 열렸다. 이곳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해 스타로 등극한 중식 대가 후덕죽 셰프만큼의 경력을 가진 통닭집이 있다. 1969년 문 연 ‘양동통닭’이다. 창업자 김정순(93)씨는 57년 동안 양동시장 한쪽에서 닭을 튀겨왔다. 지금은 아들 장귀일(56)씨가 잇고 있다.
이 집 통닭은 어디에도 없는 맛이다. 우선 튀김옷에 콩, 찹쌀 등 10여가지 곡물이 들어간다. 생강 등을 넣어 우린 물이 튀김옷 반죽의 재료다. 전분과 소금도 조금 들어간다. 튀김옷의 절묘한 레시피는 김씨가 개발했고, 지금도 그 배율은 김씨와 장씨의 누나만 알고 있다고 한다. 닭도 염지를 안 한다. 통상 치킨 레시피 첫 줄은 염지하는 법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튀긴 닭발이 함께 나온다는 점이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술안주로 나왔던 닭발. 이마저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닭발이 이 집 역사와 함께 ‘생존’하고 있다. 과거 이 집 근처에는 닭전이 있었다. 푸드덕 날갯짓하는 산 닭을 파는 골목이었다. 닭을 산 이들은 통째로 양동통닭 집에 가져갔다. 닭발까지 튀긴 통닭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1960년대 풍경을 기억하는 노년층이 많다. 얇은 튀김옷 안의 보드라운 닭발 살을 살살 발라 먹다 보면 차분해진다. 가게 밖 솥단지 6개에서 들리는 지글지글 닭 튀기는 소리도 성가로 들린다. ‘나 홀로’ 먹는 닭발 튀김 한 조각이 주는 기쁨은 때로 ‘마음의 평화’를 건넨다. 맛이 주는 즐거움은 종종 고요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안성기는 ‘마음의 평화’가 넘치는 곳에 간 게 분명하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착한 사람의 수가 줄었다. 남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수가 얼마나 될까. 이를 다 쓰고 나면 울어줄 이가 몇명이나 될까. 두려운 일이다.
광주/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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