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다룬 소설을 좋아한다. 사랑은 종종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모두 허물고 다시 쌓아 올리기도 하며, 멈춰 서거나 속도를 줄인 이후 새롭게 나아가게도 하는 중요한 정서적 도구로 이용된다. 사랑을 통해 성장하거나 완전히 다른 자아를 재발견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사랑은 그렇게 자기계발적이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화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발작을 겪고 ‘죽음을 가상 실험한’ 이후 그때 정말로 죽었다면 놓친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한다.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일년 후 그녀는 프란츠란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난 뒤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일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더는 보지 않으려 시력을 망가뜨리고 죽을 때까지 날짜도 세지 않고 시간도 확인하지 않는다.
슬픈 짐승 l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문학동네(2016) |
현재는 더 이상 화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로지 그와의 사랑했던 기억만을 종일 되짚어가며 그 기억 안에서만 살아간다. 여기에서 사랑은 삶의 한 단계가 아니라 이미 완결된 경험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삶은 덧붙일수록 오염되는 시간에 불과하다. “내 생애 에피소드에 또 다른 에피소드를 추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때 나는 거울을 모두 깨뜨려버렸다.”
화자는 사랑에 매몰되어 오래된 영상만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텅 빈 집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지 않는다면 그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고 살게 하지도 못하는 것에 사랑이라 이름은 붙일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랑은 원래 그 어떤 것에 대한 수단도 될 수 없는 게 맞다. 그럼 이렇게 존재를 정지시켜버리는 난폭함은 원래 사랑의 본질인 것일까. 깊어가는 겨울밤, 사랑의 정의에 대해 고민한다. 삶의 자질구레한 고민이 하찮게 보이고 멀어져 간다. 사랑을 다룬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우리 작가
조우리 l 어린이·청소년 소설 작가.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로 비룡소블루픽션상, ‘오, 사랑’으로 사계절문학상 대상, ‘4×4의 세계’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을 받았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