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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 뚫고 일궈낸 언론 자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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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열린 민권운동 시위 중 경찰견이 한 고등학생에게 사납게 달려들고 있다. 앨라배마 기록역사부, 푸른길 제공

1963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열린 민권운동 시위 중 경찰견이 한 고등학생에게 사납게 달려들고 있다. 앨라배마 기록역사부, 푸른길 제공


1964년 3월9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주심)이 꼬박 4년을 끌어온 사건의 판결문을 낭독했다. 수많은 법리 공방과 토론을 거쳐, 판결문 초안만 두 달 동안 여덟 차례나 고쳐 쓴 고심의 결실이었다.



“공적 사안들에 관한 토론이 제약받지 않으며, 강건하고, 개방되어야 하고, 정부와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불쾌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비추어(…), 제시된 광고는 (…) 헌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얼 워렌 연방대법원장이 이끈 재판부는 만장일치로 “앨라배마주 법원(하급심)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에 대한 미국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자, 언론의 자유에 관한 역사적 이정표가 된 판례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고위 공직자가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언론사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즉 허위임을 알거나 허위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한 채 보도했음을 입증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법리가 그렇게 확립됐다.



‘현실적 악의’ 입증 책임을 명시한 이 판결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의 보호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에 큰 힘을 실어줬다. 이전까지는 명예훼손 고소인(원고)이 실제로 자신의 명예가 손상됐는지와 상관없이, 피고의 진술이 자신의 명예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입증하면 됐다. 이른바 ‘허위성 추정’ 원칙이다.



뉴욕타임스 죽이기 l 서맨사 바바스 지음, 김수지·김상유 옮김, 푸른길, 2만5000원. 책 표지의 사진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을 변론했던 변호사들이 판결 2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그 사건의 발단이었던 1960년 3월29일치 뉴욕타임스 광고면 사본을 놓고 포즈를 취한 모습. 푸른길 제공

뉴욕타임스 죽이기 l 서맨사 바바스 지음, 김수지·김상유 옮김, 푸른길, 2만5000원. 책 표지의 사진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을 변론했던 변호사들이 판결 2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 그 사건의 발단이었던 1960년 3월29일치 뉴욕타임스 광고면 사본을 놓고 포즈를 취한 모습. 푸른길 제공


‘뉴욕타임스 죽이기’는 이 판결이 언론 자유의 승리였을 뿐 아니라, 사건의 배경인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이 권력의 재갈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재정의한 정치적·사회적 사건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 서맨사 바바스는 아이오와대 로스쿨 교수(2023년 책 출간 당시는 뉴욕주립대 교수)로, 미디어 관련법에 정통한 법학자다. 그는 뉴욕타임스라는 신문의 역사와 위상을 요약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소 제기부터 전개 과정과 법리 논쟁, 대법관 9명의 전원일치로 나온 판결의 구성 과정, 나아가 판결의 의미와 비판적 우려까지 사건의 전모를 치밀하게 복원한다.



사건의 발단은 1960년 3월 뉴욕타임스의 지면 한쪽 전체에 실린 의견 광고였다. ‘그들의 높아지는 목소리를 들어라(Heed Their Rising Voices)’라는 제목의 광고는 미국 남부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책에 항의하다 체포된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민권운동가들을 지지하며, 백인 자경단과 당국의 폭력을 고발하고, 모금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광고를 낸 이들은 민권운동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이었다. 광고에는 일부 사실관계의 오류가 있었지만 사소한 수준이었고, 특정 개인을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공공업무위원 엘(L). 비(B). 설리번은 이 광고가 자신을 비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는 민권운동에 대한 동정적 보도와 흑백 통합 지지로 남부에선 경멸의 대상이었다. 백인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은 뉴욕타임스에 50만달러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평결했다. 이것만도 전례가 없는 최고액이었다. 그러자 설리번 소송과 비슷한 “명예훼손 공격”이 우후죽순 잇달았다. “북부 언론사를 협박하고 민권운동에 관한 보도를 막으려는 지역 차원의 대규모 복수”였다.



1960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전개된 민권운동 시위를 해산하려는 ‘공공업무위원’ 설리번(오른쪽 마이크 든 백인). 앨라배마 기록역사부, 푸른길 제공

1960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전개된 민권운동 시위를 해산하려는 ‘공공업무위원’ 설리번(오른쪽 마이크 든 백인). 앨라배마 기록역사부, 푸른길 제공


1961년 말, 뉴욕타임스는 600만 달러가 넘는, 당시로는 천문학적 금액의 배상 판결들로 파산 위기를 맞았다. 신문사 경영진은 더 이상의 문제를 피하려 자사 기자들을 앨라배마에서 철수시켰다. 다른 언론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남부에서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몽둥이 구실을 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지은이는 이 사건을 ‘언론 대 개인’의 분쟁이 아니라, 국가 권력과 시민사회, 백인 우월주의와 민권운동, 침묵과 발화의 충돌로 재구성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 시야의 확장에 있다. 판결문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거리의 장면들, 예컨대, “미국에서 가장 거칠고 인종이 분리된 도시 중 하나인” 버밍햄의 거리 행진 중 곤봉에 맞는 시위대, 그 도시의 공공안전위원장 유진 불 코너가 폭력적 진압에 동원한 경찰견과 고압 물대포, ‘프리덤 라이더’(1960년대 초 미국 민권운동 시기에 인종차별에 맞서 남부를 횡단한 시민권 운동가)들의 피로 얼룩진 얼굴이 법정 논리의 배경으로 생생하게 호출된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자유로운 토론에서 오류가 있는 진술은 불가피하며, (…)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선 ‘숨 쉴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보호받아야 한다”며 ‘위축 효과’를 경계하고,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공직자의 ‘현실적 악의’ 입증 책임을 뒷받침했다. 이런 기준은 추상적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민권운동이 만들어낸 정치적·도덕적 압력의 결과였다.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민권운동 시위를 벌이고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활동가와 시민들. 앨라배마 기록역사부, 푸른길 제공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민권운동 시위를 벌이고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한 활동가와 시민들. 앨라배마 기록역사부, 푸른길 제공


이 사건은 “언론이 과거보다 더 대담하게 공익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1970년대부터 시작된 탐사보도 급증에 기여하고, 정부의 부패와 권력 남용에 대한 중요한 견제장치”가 됐다. 베트남 전쟁의 실상, 워터게이트 사건의 폭로는 설리번 판결이라는 방패가 없었다면 은폐된 채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은이는 이 판결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에도 귀를 기울인다. “언론의 부주의한 보도와 저널리즘의 오만과 무책임을 조장하고(…) 황색 저널리즘의 과잉 현상”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그 일부다. 특히 오늘날 적어도 주요 선진국에선 언론의 자유가 법과 제도로 보장되고,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힘입어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졌으며, 검증되지 않은 보도나 악의적인 ‘가짜뉴스’들이 횡행하는 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설리번 판결 뒤) 언론계에서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책임’ 논의가 시작되고 기자들은 자유를 남용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 ‘윤리강령’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사실을 지은이가 특별히 언급한 이유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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