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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가자평화委’에 러·벨라루스 참여… 독재국가 무대 되나

조선일보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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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佛 등 서방국가들은 불참
지난해 8월 15일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르프-리차드슨 합동기지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5일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르프-리차드슨 합동기지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종전과 전후 재건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위원회’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평화위원회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권위주의 국가들의 ‘신분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국가들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국제사회 복귀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트럼프는 가자지구에 평화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과도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 백악관은 현재까지 60여 국을 위원회에 초청했으며, 이 중 현재까지 30여 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는 22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평화위원회 헌장 서명식을 개최하고 “매우 흥미로운 날”이라며 “가자 문제 해결에 성공하면 다른 분야로도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역대 가장 중요한 기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명식에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이 참석했다. 헌장에는 회원국 가입·탈퇴 결정권을 갖는 초대 의장을 트럼프가 맡고, 회원국 임기는 3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초대 회원국에 한해 10억달러(약 1조4700억원)를 부담하면 ‘영구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창설 헌장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창설 헌장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AP 연합뉴스


◇러, 평화위로 국제사회 복귀?

트럼프는 헌장 서명식 전날 다보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위원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푸틴은 참여 여부를 논의하겠다면서, ‘영구 회원’ 자격 요건으로 트럼프가 제시한 10억달러를 미국이 동결한 러시아 자산에서 지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과 미국에 묶인 러시아 자산은 약 3000억달러(약 44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이 동결 자산을 러시아에 전쟁 배상금을 요구할 때 일종의 담보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푸틴이 전혀 다른 용처를 제안하자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의 판을 흔들려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표적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도 참가 의사를 밝혔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독재와 인권 탄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지원 등을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크게 위축된 상태다. 로이터는 “미국과 오랫동안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국가들이 제안을 수락했다”고 분석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각각 트럼프와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던 헝가리와 아르헨티나, 최근 트럼프 중재로 휴전 협정을 체결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했던 파키스탄 등이 평화위원회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 밖에도 코소보,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 참여를 공식화했다. 반면 서방 자유 진영인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은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평화위 초청을 받았다. 청와대는 이날 “동 위원회의 평화·안정에 대한 기여 측면 및 우리의 역할 등 제반사항을 고려해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진영

그래픽=이진영


◇“권위주의 국가들 숨통 틔워줄 우려”

트럼프의 평화위원회가 권위주의 국가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필요로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러시아 견제를 거론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를 비판해 왔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그 우방국을 평화위원회로 끌어들이는 것은 스스로 강조해 온 대러 압박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참여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슬로베니아는 트럼프의 초청을 공식 거부하며 해당 구상이 유엔 헌장을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를 잠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푸틴의 참여를 이유로 거절 방침을 세웠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트럼프는 22일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듯 “대부분은 매우 인기 있는 지도자들이고, 일부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신다“며 ”참여한 사람 모두 마음에 든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체하려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평화위원회는 가자지구 사안에 그치지 않고 향후 다른 분쟁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구상을 헌장 초안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의 대표성을 약화해 다자주의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훼손하고 특정 개인·국가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는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신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기면서도 “유엔은 잠재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계속 역할을 하도록 놔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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