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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의 시대사색]학교폭력이라는 거울, 우리 사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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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건을 많이 다뤄온 한 변호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자 가해 학생의 부모-법률에 밝은 사람이었다-는 자녀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절대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말아라.” 다음으로 “너도 그 학생에게 맞거나 피해를 본 적이 있을 테니 무엇이든 기억해내라.” 마지막으로 “그런 사례가 없으면 친구들에게 물어봐서라도 피해 학생의 ‘가해 사실’을 수집해라.” 강남의 한 사례에서는 가해·피해 학생이 6명이었는데, 변호사도 6명이 등장했다. 요즘은 SNS에서의 욕설과 조롱, 가벼운 힐난까지 모두 증거로 제출된다. 욕이 일상화된 또래 문화 속에서 과거 대화 기록 전체가 가해 자료로 재구성된다. 졸업을 앞두고 ‘앙갚음’ 차원에서 신고한 뒤 학폭심의위원회에는 아예 출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학교폭력법보다 처벌이 더 강한 스토킹처벌법으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처음 듣는 사람은 “설마 저 정도까지야?” 하고 되묻는다. 물론 상당수 사안은 학교의 노력으로 학교폭력 심의 절차까지 가지 않고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오늘날 학교폭력 처리 방식이 교육 현장을 얼마나 깊이 왜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초등학교에서는 오전에 싸우던 아이들이 오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웃으며 논다. 하지만 그 시간, 부모들은 이미 법적 대응을 준비한다. 교육지원청의 한 학폭심의위원은 “아이들조차 희미하게 기억하는 몇달 전 일을 ‘학교폭력’으로 규정해놓고, 그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려 애쓰는 제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어른들만 시간이 멈춘 채 싸움을 키운다. 이 간극이 오늘의 학교폭력 문제를 관통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학교를 사회의 거울이라 생각해왔다. 학교폭력 갈등은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갈등이 작동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강한 처벌이 낳은 역설

현재의 학교폭력법은 일반 형사법이나 소년법보다도 강한 엄벌주의로 운용된다. 선고유예나 기소유예는 허용되지 않고 공소시효도 없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최대의 낙인이 부과되어야 하며,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대학 입시에서도 낙방해야 한다.

적대적 진영정치가 극심한 사회에서 학교폭력 사건은 곧 정치적 전장이 된다. ‘적’에게는 최고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고 ‘우리 편’에게는 최저 기준을 적용하는 이중잣대가 그대로 재현된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연루된 경우 학교폭력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소비된다. 그 끝에는 언제나 “더 강한 처벌”만이 남는다.


극단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익숙한 경로를 반복한다. “충격 → 강한 처벌 여론 확산 → 강한 처벌 위한 법·제도 개정 → 소송 급증 → 방어 전략 확산 → 갈등 만연”이다. ‘정치의 사법화’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만, 학교 현장을 보면 ‘학교의 사법기관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싸움과 갈등은 모두 ‘폭력’이라는 법적 범주로 포섭되고, 아이들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물론 모든 학교폭력 사안을 가볍게 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 아이의 인생을 파괴하고,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며,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몰아가는 참혹한 폭력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사안은 준사법적으로 엄정하게 다뤄져야 하며, 피해자 보호와 치유는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안까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응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극단적이지 않은 사안인데도 극단적인 주관적 인식으로 무장하고 최대치로 응대한다.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용서와 화해, 포용의 미덕도 발휘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는 투쟁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 절제와 관용의 미덕을 통해서도 성숙해진다.

학교는 다시 교육의 자리로

이제 2가지 차원의 성찰이 필요하다. 하나는 미시적인 법제도적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거시적인 사회문화적 전환이다. 법제도적으로는, 예컨대 초등 1·2학년의 경우 학교폭력법 적용을 원칙적으로 제외하고 교육적 해결을 기본으로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학교와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분쟁조정과 화해의 공간을 법제도적으로 설정하고 확대해야 한다. 학교장이 요청하면 갈등조정관이 제3자로 참여해 해결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 심의에서도 사안의 심각성과 함께 반성·화해의 정도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재량이 필요하다. 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나 당사자 간 화해 정도를 기본 판단요소와 부가적 판단요소로 구분해, 심의 과정에서 경미한 사안의 경우 화해 종결을 향한 권한이 부여되면 좋겠다. 지금은 5가지 항목에서 모두 똑같이 0점에서 4점에 이르는 점수 중 선택하게 되니, 반성이나 화해가 없으면 경미한 사례인데도 학교폭력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문화적 성찰이 요구된다. 가족 중심 문화와 입시 경쟁이 극단화된 사회에서 학교폭력이 생활기록부와 입시, 나아가 평생의 낙인이 되는 구조라면 부모들이 사활을 걸고 대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학교폭력 갈등은 교육 문제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나는 산업화의 그늘뿐 아니라 민주화 이후의 그늘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권리의식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억압과 침해에 맞서 싸우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 민주적 전투성이 이제 자녀를 위한 무한 소송전으로 전이되고 있다. 화해로 끝날 수 있었던 갈등마저 적대로 증폭시키는 이 흐름은, 아이들의 인성마저 잠식한다.

교육은 달라야 한다.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어야 한다. 평등한 공존을 배우는 공동체적 훈련의 장이어야 한다. 이 단순한 원칙을 다시 붙잡지 못한다면 학교폭력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학교폭력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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