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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청와대와 도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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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겼다. 잘한 일이다. 청와대라는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서였다. 그 잡지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매달 한 권씩 배달돼 왔는데 가끔 당시 대통령 아들의 모습이 실렸다. 청와대 잔디밭에서 대통령인 아버지와 축구를 하는 모습, 진돗개와 놀고 있는 모습, 수업 시간에 손을 번쩍 든 사진들이 실려 있다.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대통령 아들은 저 먼 어느 딴 세상 사람 같았다.

다음에 청와대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린 것은 1968년에 일어난 김신조와 북한 무장간첩 사건 때문이었다. 그들의 목표가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 관한 기억은 세상 어딘가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곳이거나 공격 목표가 되는 곳이었다.

그 이후에도 청와대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 어쩌다 청와대 앞을 지나면 반드시 검문을 받았고, 검문이 사라진 뒤에는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멈춰서 행선지를 말해야 했다. 기다란 종이 관에 사진을 말아 담아 택시를 타고 액자를 맡기러 가는 길에는 그 용도에 관해 반드시 물었었다. 가장 한심했던 것은 청와대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뒤 담에 붙은 청와대 내부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사진의 내용은 그렇다 치고 담벼락에 대강 붙여놓아도 된다는 발상은 끔찍했다.

내가 청와대 본관 앞을 달리고 있는 모습의 작품은 1996년에 만든 합성 사진이다. 제목은 ‘도망자 16’으로 권력, 역사, 폭력 등으로부터 도망하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담은 ‘도망자’ 연작의 하나이다. 배경이 된 청와대 본관 사진은 어느 매체에 실린 것을 스캔했고, 달리는 남자는 내 젊은 시절 얼굴을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등장하는 케리 그랜트의 몸에 합성했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엉성한 ‘딥페이크’인 셈이다. 절대적인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청와대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관한 자백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보면 청와대는 경복궁의 일부로 보인다. 고려시대부터 이궁이 있던 곳이고 경복궁의 후원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청와대는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일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러나 청와대 건물들이 배치된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명확해진다. 커다란 본관과 대통령 거주지는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일하는 곳은 아래쪽에 몰려 있다. 대통령을 격리시키고 참모들과 의사소통을 막기 위한 공간 구성처럼도 보인다. 이는 아마도 청와대가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공간 배치가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이미 있던 건물에 새 건물들을 덧붙여 지어서 그럴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를 쓰던 몇몇 대통령들은 집무 공간을 이리저리 옮겨보았을 것이다. 국민주권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여민관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어 여러 실장과 거리를 좁혔다는 기사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격리를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한 수인 것 같다. 과연 그 한 수가 묘수가 되어 청와대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어지지 않을지 기다려보기로 하자.


강홍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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