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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쇼트폼으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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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아침에 눈을 떠 포털의 사회·정치 뉴스를 훑는 대신, 유튜브 ‘쇼츠’나 취향에 맞는 온라인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는 이러한 변화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7명이 뉴스를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답하였다. 시민들은 단순히 뉴스가 재미없어서, 그리고 갈등과 자극으로 점철된 보도에 지쳐서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선택했다고 답하고 있다. 바로 뉴스 회피 현상이다.



언론재단의 조사 결과를 보며 40여년 전 미국의 미디어 학자 닐 포스트먼이 던진 ‘죽도록 즐기기’의 경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는 1985년 포스트먼이 남긴 미디어 비평의 고전이다. 그는 현대 사회가 조지 오웰의 ‘1984’에서처럼 통제와 감시에 의해서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정작은 ‘죽도록 즐거워서’ 파멸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이 모든 공적 담론을 ‘쇼 비즈니스’로 전락시켜 시민들의 사고 능력을 거세할 것이라 예언했지만, 실상 오늘날 우리는 텔레비전 대신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라는 더욱 강력하고 안락한 즐거움을 탐닉하며 스스로를 공론장에서 격리하고 있는 듯하다.



단순하게 ‘재래식 미디어’를 덜 사용하고 새로운 온라인 미디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에는, 국민의 절대다수가 뉴스를 회피하고 있다는 결과가 전해주는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사회는 사실 정치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공공의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었고, 이는 부작용도 꽤 있었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 궤도 이탈을 막아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뉴스 회피 현상의 확대는, 어쩌면 포스트먼이 우려했던 것처럼, 우리 민주주의 토양이 더욱 척박해질 수 있음을 알리는 징후일 것 같아서 못 본 척 넘어갈 수가 없다.



물론 뉴스 회피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4~2025’의 자료를 보면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도 뉴스 회피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다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뉴스 회피는 다른 국가들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면이 있다. 즉 유럽 시민들이 전쟁이나 기후위기 같은 비극적 소식에 의한 ‘정서적 소진’으로 눈을 감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내부의 ‘정치적 혐오’로 인해 광장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양극화의 종착역이라 불리는 미국 역시 시민의 절반 가까이(약 45%)가 뉴스를 외면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회피율이 7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공론장이 미국보다 더 심각한 ‘정치적 냉소’와 ‘쇼트폼의 도파민’에 잠식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누군가는 뉴스 회피를 소득 4만달러 시대의 역설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미디어학자로서 온라인 쇼트폼 콘텐츠의 확산이 또 다른 중요한 영향 요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튜브 쇼츠 등 쇼트폼 알고리즘은 진실이나 맥락보다 ‘순간적 자극’을 최우선한다. 짧고 강렬한 영상에 뇌가 길들여질수록, 인내심과 문해력을 요하는 뉴스는 ‘지루하고 불편한 소음’으로 전락한다. 입맛에 맞는 1분짜리 정보만 섭취하다 보니,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하면 논리적 분석 대신 불쾌감을 느끼며 ‘가짜’라 치부한다. 확증 편향이 쇼트폼을 타고 더 빠르고 강력하게 번지면서 뉴스 전반에 대한 피로감은 커지고, 이는 다시 ‘적극적 뉴스 회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공화국은 말 그대로 ‘공적인 것’(Res publica)을 공유하는 자들의 공동체다. 공적인 사안들에 대한 뉴스를 보는 것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인 동시에, 공화국(Republic)의 존립을 지탱하는 시민으로서의 엄중한 책임이라 생각한다. 40년 전 포스트먼의 경고와 미국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시민 살해를 직접 연관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정원은 비바람보다 죽도록 무서운 즐거움과 ‘무관심’이라는 가뭄 속에서 가장 먼저 시든다는 것이다. 지겨워도 피곤해도 끈질기게 동굴에 머물지 않고 광장을 바라보는 것이 공화국 시민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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