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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이 이념 문제? 부지선정, 안정성, 핵폐기물 ‘현실’은 어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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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새울 원전 3, 4호기 건설 현장 전경.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울산 울주군 새울 원전 3, 4호기 건설 현장 전경.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닫혀 있는 건 옳지 않다”며 원전(핵발전) 건설의 불가피성을 시사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규 원전 건설 여론이 60%대’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은 데 대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여론 뒤에 숨어 미래 세대에 위험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조처”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여론조사를 포함해 그간 정부가 진행해온 공론화가 신규 원전 건설의 실질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수용성 문제로 부지를 찾기 어렵고, 핵폐기물의 부담을 미래 세대로 넘겨야 하며, 앞으로 전력망 운용에 부담을 주는 등 원전이 지닌 문제점은 대통령이 ‘이념’으로 치부한 것과 달리 엄연한 ‘현실’이란 것이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은 가능할까?





21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규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찬성 응답이 60%대로 나타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 환경운동연합, 에너지전환포럼, 에너지정의행동 등 여러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정해진 결론(원전 건설)을 정당화하려는 호감도 조사를 ‘국민의 뜻’으로 포장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열어놓고 판단하자”고 했는데도 이처럼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는, 지난 두 차례의 정책토론회와 이번 여론조사에서 신규 원전을 건설할 때 따르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만약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한다고 해도 부지를 선정하는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우리나라 동해안에는 부산 고리(6기), 울산(4기), 경주(6기), 울진(10기) 등 26기 원전(건설 중, 가동중단 포함)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서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을 이루고 있다. 기존 부지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새 부지를 선정해야 하는데, 군사정권 시절 국가가 밀어붙일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새 부지 선정은 원전 운영과 핵폐기물의 안전성 등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이겨내야 한다. 과거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이 원전 예정 후보지로 지정된 바 있으나, 각각 양산단층과 근덕단층이 존재해 지진의 위험성이 있어서 원전 부지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0월 진행된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4년 10월 진행된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영덕과 삼척이 원전 후보 예정지로 지정될 때에도 커다란 갈등이 있었다. 두 지역에선 2014~2015년 각각 민간 주도로 원전 건설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영덕에선 91.7%(1만1201명 중 1만274명), 삼척에선 84.9%(2만8867명 중 2만4531명)이란 ‘반대’ 의견을 확인한 바 있다. 성원기 강원대 명예교수(전자공학)는 “이번 기후부 여론조사에서 만약 ‘집 주변에 원전을 지어 핵폐기물을 감당해야 한다’는 전제로 조사했다면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또 “과거 경주, 포항 지진 피해로 위험성이 드러난 동해안 지역은 더 이상 원전 안전지대일 수 없고, 정부가 원전 건설을 밀어붙일 경우 주민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싸고 안정적’ 원전의 강점, 현실적인가?





이미 전력망 포화 상태인 동해안 지역에 신규 원전을 건설할 경우, 발전시설을 짓고도 써먹지 못하는 ‘좌초자산화’ 문제가 심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경북 울진에서 신한울 1, 2호기가 본격 가동된 2024년 전후 전력망이 연결된 강원도 삼척, 강릉 화력발전소의 경우 가동률이 10%대로 급감하기도 했다. 당시 민간 발전소들은 “국가 에너지 운용 계획에 맞춰 지어진 발전소들이 부도나 파산 위험에 처했다”며 손해에 대한 법적 다툼을 예고하기도 했다.



다른 발전원에 견줘 원전의 강점으로 주로 얘기되는 것은 기저전원으로 적합하다는 것과 발전비용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보면, 원전이 전체 전력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기는 나라가 프랑스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밖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발전비용이 낮아진 상태다. 이 때문에 설령 부지를 확보해 제대로 지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신규 원전 건설은 그 자체로 ‘무리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차 전기본에 원전은 지난해 기준 26기(전체 전력에서 30% 비중)에서 2038년 32기(35%)로 늘리는 계획이 반영되어 있다.



국내 원전 배치도. 환경운동연합 제공

국내 원전 배치도. 환경운동연합 제공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원전이 싸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이었다면 많은 국가가 원전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원전 선진국인 러시아와 미국조차 비중이 20%에 못 미친다. 전체 전력 60~70%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경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환경에서 출력 제어로 인한 기기 고장 및 안정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짚었다. 게다가 설계부터 출력 제어 기능을 고려한 프랑스 원전과 달리, 한국형 원전은 출력 제어 설계를 적용하지 않아 유연성 운전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번 달 진행된 정책토론회에서 한수원은 “앞으로 한국형 원전에도 출력 제어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한 바 있다.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 누가 어떻게 떠안나?





가장 골치아픈 문제 가운데 하나는, 원전 가동 때 배출되는 핵폐기물 처리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에서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를 비롯한 핵폐기물들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관하거나 처리할 시설을 마련하지 못해 오랫동안 원전 부지 안에 별 대책 없이 보관해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는 처리장을 만든 나라는 아직 핀란드가 유일하다. 거대한 지하 화강암반을 뚫어 거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밀봉한다. 스웨덴이 두 번째로 건설을 시작했을 뿐, 다른 나라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켜,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60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짓는다는 목표는 세웠다. 그러나 지질 적합성 조사 및 주민 반대 등 넘어야 할 산이 산더미다. 핵폐기물 처리장 입지를 둘러싼 갈등 양상은 신규 원전 부지의 그것과 차원이 다를 수 있다.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안에 폐기물이 담긴 철제 통이 쌓여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안에 폐기물이 담긴 철제 통이 쌓여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고준위 방폐물을 연구하는 시설이 태백시에 들어설 예정인데, 그곳마저도 균질한 암반이 아니라 화강암·이암·사암 등이 혼재돼 있어 입지가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준위 방폐장을 운영하는 핀란드의 경우, “운영하는 원전이 5기에 불과하고 출력도 낮아, 우리나라처럼 다수 원전을 가동하는 곳과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신규 원전 건설을 결정할 때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안인데, 정부가 추진한 공론화 절차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가 ‘여론’만을 앞세워 신규 원전의 필요성을 내비치는 데 대해 가장 큰 비판이 집중된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에서 “대형 사고의 가능성과 피해 규모, 노후 원전 문제, 사고 발생 시 대피와 보상, 핵폐기물 관리의 현실 등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은 채, 안전성 판단은 시민 개인의 느낌에 맡겨졌다”고 비판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여론조사는 공론화가 아니라 사실상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는 절차였고, 에너지정책, 전력계획, 핵발전 정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국가 계획에 대한 판단을 시민들의 단순한 찬반 인식으로 환원한 무책임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경직성 등 원전의 기술적 단점을 공유하지 않고 진행한 부실한 여론조사는 향후 원전 좌초자산화라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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